언니가 고등학생이 되자
아빠의 폭력은 조금 잠잠해졌다.
그 무렵, 나는 중학생이었다.
나는 반에서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조용했고 말이 없었고 존재감은 늘 무채색에 가까웠다.
우리 중학교에는 이른바 ‘전교생 왕따’가 있었다.
제이는 외모가 오랑우탄을 닮았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오랑이’라고 불렸다.
이상하게도 제이가 마음에 걸렸다.
왜였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동정심이었을까.
착한 아이로 보이고 싶었던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제이보다 내가 낫다는
은근한 우월감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먼저 말을 걸었고 친구가 되자고 했다.
그러자 제이를 놀리던 아이들이 나를 보며 말했다.
“너 진짜 쟤랑 친구 할 수 있을 것 같아?”
“오랑이 외모 좀 봐.”
“말은 섞어도, 친구는 아니지.”
그 말들은 제이를 향한 조롱이었고
동시에 나를 시험하는 말이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제이랑 정말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나는 제이를 친구라고 부르면서도
끝까지 함께 서지는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이는 나에게 삐딱해졌고
내가 말을 걸면 짜증을 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접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러니까 친구가 없지.’
그 시절의 나는 제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가간다는 내 선택이 제이에게는
또 한 번 기대하게 만드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끝까지 함께하지 않는 호의가 얼마나 상처가 될 수 있는지.
따뜻하다고 믿었던 내 의도조차
이미 마음이 닳아 있던 아이에게는
왜곡되어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제이를 남자아이들이 발로 차고 때릴 때
여자아이들이 웃으며 ‘오랑이’라고 부를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폭력 앞에서 나는 너무 무서웠다.
나중에야 선생님이 와서 그 소란은 멈췄다.
어른이 되어서야 나는 그 장면을 자주 떠올린다.
그때 “하지 말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 장면이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는
폭력 앞에서 무기력한 나를 다시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빠의 폭력 앞에서도 나는 늘 그랬다.
말하지 않았고 막지 않았고 그저 견뎠다.
학교에서의 침묵은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폭력 앞에서
나는 방관자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