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중학생이 되자 달라졌다.
소위 잘나간다는 아이들이랑 어울리기 시작했고
점점 엇나갔다.
친구를 괴롭히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가출을 했다.
사람들은 그걸 중2병이라고 불렀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하지만 집 안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언니가 가출한 날
엄마와 아빠는 밤늦도록 언니를 찾아다녔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돌아온 엄마 아빠는
나에게 말했다.
“딸이 두 명이라서 다행이다.”
“하나였으면 어쩔 뻔했니.”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그 말은 위로처럼 들렸지만
그 말의 의미를 나는 알았다.
나는 ‘나’라서 다행인 존재가 아니라
언니가 비운 자리를 대신 채울 수 있어서
다행인 존재였다.
그 무렵부터
집 안에는 늘 긴장이 감돌았다.
언니의 문제는 점점 커졌고
아빠의 술 마시는 횟수도 잦아졌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 더 나빠질 걸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걸 말하지 않았다.
그때부터였을까.
내가 더 열심히 괜찮은 아이가 되기 시작한 건.
공부를 더 열심히 했고
엄마 아빠 말을 더 잘 들으려고 애썼다.
싫은 것도 좋다고 말했고
힘든 것도 괜찮다고 넘겼다.
그게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착한 아이가 되었다.
아니, 착한 아이가 되려고 애썼다.
그 시절의 나는
부모의 관심이 좋아서 그랬을까,
아니면
그 관심이 너무 씁쓸해서
더 붙잡고 싶었던 걸까.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 언니가 그 시절에 엇나가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아이였을까.
누군가의 불행이 있어야만
내가 잠시 선택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잔인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몰랐지만
이미 그때부터 나는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