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날부터 이 집에서 당연하게 여겨졌던 모든 것들을
더 이상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졌다.
왜 언니와 나는 한 방을 쓰는데
남동생 방은 우리 방보다 더 클까.
왜 엄마와 아빠는 나에게만 집안일을 시킬까.
왜 요구는 항상 나에게만 향할까.
그동안 ‘둘째’라는 이유로 받아왔던 차별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언니 역시 나를 존중해주지 않았다.
같은 방을 쓰면서도 남자친구와 늦게까지 통화를 하거나 게임을 했고,
그 방에 함께 있는 나는 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엄마와 아빠에게 나는 이 집의 가족이라기보다
가정부에 가까웠다.
집에 오면 늘 같은 말이 돌아왔다.
“청소는 왜 안 했냐.”
“밥은 왜 안 해놨냐.”
나는 점점 숨이 막혔다.
결국 참지 못하고 모두에게 소리쳤다.
“왜 나한테만 이래?!
왜 늘 내가 해야 해?!
왜 항상 나만 참아야 해?!”
하지만 돌아온 건 이해가 아니라 침묵과 시선이었다.
나는 문제 있는 사람
예민한 사람
정신이 이상한 사람처럼 취급받았다.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집을 나왔다.
친구 집을 전전했다.
집에 있지 않아도 불안했지만
집에 있는 것보다는 숨을 쉴 수 있었다.
가출해 있는 동안 아무에게서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갈 곳이 없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를 대했다.
그때 알았다.
이 집에서
내가 사라지는 건
아무 일도 아니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