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오늘도 추억이 됩니다.
가끔씩 예상하지 않게 시간이 납니다.
오늘 같은 날입니다.
원래 수업을 마치면 바로 집으로 갑니다.
학교란 학생들에게는 오래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장소이지만,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편하지 않은 장소입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쓸데 없이 시간을 보는 것은 여전히 좀 어색합니다.
수업을 마치면 바로 집으로 가는 것이 상당히 자연스럽고 편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늦게 까지 수업을 하는 와이프를 기다립니다.
앞으로 약 2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됩니다.
수업을 마치고 와이프가 수업하고 있는 학교에 오려면,
호수라고 하기에 약간은 민망한, 하지만 연못이라고 하기엔 좀 큰,
그래서 저수지라 불러야겠지만 저수지는 낭만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억지로 호수라 부르는
단대호수를 지나야 합니다.
억지로 호수라 부르긴해도 다행스럽게 단대호수는 나름 풍경이 나쁘지 않습니다.
오늘은 지나오는 길에 청둥오리가족을 보았습니다.
여름이 다 되어 가는데 청둥오리가족이 호수에 있었습니다.
엄마청둥오리와 새끼오리 6마리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초 여름날 오후,
새끼오리 여섯마리는 무엇이 그리 궁금한지 주둥이를 한 것 내밀고 여기 저기 쑤시고 다녔고,
어미는 부지런히 이 놈 저 놈들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청둥오리 전문가는 아니지만, 새끼오리들의 나이는 대략 한달이 되지 않아보였습니다.
어릴적 학교앞에서 병아리를 중닭으로 키워본 경험에서 나온 것이니,
대략 맞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면 어쩔수 없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절대 두달을 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믿어도 좋습니다.
학교앞에서 산 병아리를 중닭까지 키웠습니다.
하지만 중닭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묻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른은 잔인하다는 말 밖에는...
오리가족을 한참을 보다 보니 궁금해졌습니다.
'왜 아직도 여기에 있지?'
'보통 겨울을 나고 다시 북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였나?'
'왜 이제 새끼오리를 낳았지?'
이런 저런 질문이 떠 올랐습니다.
엄마오리에게 물어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엄마오리에게도 분명 무슨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엄마오리가 이야기 해 주기를 은근히 기다렸지만,
새끼를 챙기느라 바빠 그런지 아니면 애써 외면하는 건지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궁금해 하며, 나는 나의 길을 갔습니다.
오리들은 내 걱정이 아니라도 아주 잘 지낼 것입니다.
내 걱정은 처음부터 필요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내 쓸데 없는 오지랖이 엄마오리를 괴롭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신경끄고 사는 것은 내게도, 오리에게도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렇게 길을 걸어오며 비가 오지 않으려나 걱정을 하며,
와이프가 있는 학교에 와서 와이프를 만났습니다.
오늘 와이프는 수업시간이 어중간해 저녁 먹기가 어중간합니다.
끼니는 때를 놓치면 참 애매해집니다.
너무 늦게 저녁을 먹으면 자기전에 속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수업까지 남은 시간은 약 15분입니다.
"편의점어때?"
하고 와이프에게 물었습니다.
"편의점? 뭐 먹게?"
"튀김우동?"
"튀김우동?"
잠시 생각하던 와이프는
"나쁜 생각은 아닌데?"
라고 대답했습니다.
나쁜 생각이 아니면 그래도 성공한 편입니다.
혼자일때 학교편의점에서 사발면을 먹는 것은 약간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좀전에 이야기 한 것 처럼, 학생일 때는 너무 자연스럽지만 나이가 들면 그렇게 자연스럽지 못해집니다.
하지만 오늘은 와이프와 둘이 있으니, 괜찮을 듯 합니다.
그렇게 교내 편의점에서 튀김우동 두개를 샀습니다.
젓가락 두개는 와이프가 챙겼습니다.
편의점 뒷편에 있는 온수기 앞에서,
사발면의 비닐을 뜯어 내고,
뚜껑을 열어 스프를 풀고,
뜨거운 물을 표시된 선까지 부었습니다.
그럼 약 4분간만 더 기다리면 됩니다.
5분을 기다리면 면발이 퍼져서 싫습니다.
약 4분간 기다렸습니다.
와이프에게는 4분을 기다렸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와이프는 꼬들거리는 면발을 싫어하지만, 난 꼬들거리는 면발이 좋습니다.
그래서 4분간 기다렸습니다.
다행히 와이프가 눈치 채지는 못한 듯 합니다.
눈치를 못 챈건지 아니면 알고도 넘어가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와이프는 나의 얄팍한 속셈을 알고도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추운 겨울날 내 쪽 장판에 전기를 좀 더 오래 키고 있는다든지,
이쁘게 껍질이 까진 삶은 계란을 내가 먹는다든지,
새벽에 일어난 아이의 소리를 들었지만 자는 척 했던 이런 일들 말입니다.
알고도 그냥 넘어간 듯 합니다.
어쨌든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낮에 써 두었던 글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해가 되느냐? 말은 되는 것 같으냐?' 같은 질문을 했고
'괜찮은 것 같다. 나쁘지 않다'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대충 이야기를 마치고 나니, 사실 몇분이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난 4분이 지났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퍼진 면발이 싫어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믿으면 퍼진 면발도 다시 꼬들해질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먹는 사발면의 첫 젓가락은 언제나 맛있습니다.
국물도 맛있습니다.
둘이서, 교내 편의점에서, 사발면을 먹고 있으면,
옛날 생각도 나고 그래야 하는데, 옛날 생각은 나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옛날을 추억할 만큼 그렇게 나이가 들지 않아서 그런가 봅니다.
다행히 아직은 한 참 젋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참 다행이라 생각됩니다.
사발면을 먹으면서 와이프는
"김치없이 라면먹기 참 힘드네"
라고 말했습니다.
"김치 하나 사가지고 와?"
"됐어"
"아니 사 올게, 바로 옆인데"
"... 됐거든"
와이프는 살짝 주저했지만 괜찮다고 했습니다.
이미 사발면을 반 이상 먹었을 때라 김치를 사오지 않았습니다.
아직 사발면이 반이나 남았기 때문에 그때 사올 걸 그랬습니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와이프는 사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난 정말 사오려고 했습니다.
만약 와이프가 "사 와"라고 말했다면 분명히 사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와이프가 됐다고 했어도 사오는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말을 해야 알아? 멍충이' 와이프의 말이 들리는 듯 합니다.
다시 학교에서 사발면을 먹을 때가 언제가 될지 알수는 없지만,
만약 다음에 다시 사발면을 먹는다면 꼭 김치를 같이 사려합니다.
사발면 국물에 김치를 넣어 시원하게 먹어도 좋을 듯 합니다.
이제 한 30분만 기다리면 와이프는 수업을 마칩니다.
'김치 한 봉지' 사서 기다리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집니다.
시도해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아까, 김치 먹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하나 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