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척

엄지가 문에 낀 날

by 김현부

먹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주린 배가 채워지는 것도 좋지만

맛난 음식이 입 안에 퍼지는 느낌이 참 좋습니다.


오물 오물 씹으면 음식의 맛과 향이 입 안에 퍼집니다.

내 생각과 의지를 전하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던 혀가,

내가 생각하기도 전에 분주히 움직이며 입 안에서 음식을 이리저리 보내 골고루 씹게 해 줍니다.

그리고 잘게 부서진 음식을 목 뒤로 넘겨주는 친절함까지 베풀어 줍니다.


고마운 혀, 혀 조심해야겠습니다.


음식은 식도를 타고 뱃 속으로 내려가 몸과 마음을 든든하게 합니다.


참 기분 좋은 느낌입니다.


어제 친구과 같이 저녁을 먹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저녁을 먹었습니다.


참 기분 좋은 느낌입니다.


이렇게 기분 좋은 날엔 너무 흥분하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기분이 좋아 덤벙거리다 보면 행동이나 말을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저녁을 다 먹고 친구가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친구에게 "조심해서 가라" 인사를 하고 차 문을 닫았습니다.


아쉬웠나 봅니다.

왼손 엄지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무심하게도 그 마음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아쉬워 늦게 나오던 엄지가 차 문에 끼었습니다.

엄지가 깜짝 놀랐습니다.

나도 깜짝 놀랐습니다.


앗! 하고 다시 문을 열어지만, 엄지는 이미 뻘겋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화를 내는듯 씩씩거렸습니다.

'욱식 욱신'했습니다.


"괜찮아?"

친구가 물었습니다.

"살짝 끼었어, 괜찮아 ㅎㅎ"


살짝 끼었던 것 같았습니다. 분명 그랬던 것 같았습니다.

덤벙거리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조심해서 가, 운전 똑바로 하고"

친구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집으로 걸어왔습니다.


'어? 생각보다 아픈데?'

아픔은 당시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아파옵니다.

자고 나면 괜찮을 것 같았는데, 자고 나면 더 아픈 일도 있습니다.


많이 욱신거려 컵에 냉수를 한 가득 받아 엄지의 화난 기분을 좀 식혀 주었습니다.

엄지는 냉수 안에서도 화를 식히지 못하고 욱신거렸습니다.


같이 텔레비전을 보던 와이프가

"괜찮아?"

하고 물었습니다.


"괜찮아, 살짝 끼었어. 찬물에 담그고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나의 바램을 이야기했습니다.


와이프는 걱정반 한심함반의 눈빛을 보내 주었습니다.

"애처럼 참나..."


생각해 보니 문에 손가락을 껴본지가 참 오래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문에 손가락을 껴 퍼렇게 멍들면 그렇게 속상하고 화까지 낳었는데,

이제 딸아이들도 하지 않는 짓을 합니다.


'누군가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하겠다!'라는 사명의식이 전혀 필요없는 일인데 말압니다.

어쨌든, 한참을 찬물에 담구어도 여전히 엄지는 욱신거렸습니다.


밤 9시정도였는데, 와이프가

"커피나 조금 마실까?"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냉수찜찔을 잠시 중단하고 커피를 내렸습니다.

반쪽남은 크런치초콜렛을 접시에 담아 가져왔습니다.

와이프에게 커피를 대령하고 다시 냉수 찜질을 하려는데 컵이 비어 있습니다.


"이 물, 마신거야?"

"왜? 먹으면 안돼?"

"손가락 담근 물인데?"

"아 놔, 손만 담궜어? 딴 짓 한거 아니지?"


물컵에 할 수 있는 딴짓이 무엇이 있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딱히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왠지 살짝 아쉽긴 했습니다.


"쏘리, 딴짓을 아직 못했네" 라고 대답했습니다.


와이프는 입을 행구듯 커피를 입에 머금고 크런치 초콜렛을 꼭꼭 깨물어 먹었습니다.

나도 옆에서 같이 마시고 깨물어 먹었습니다.


'내일이면 괜찮아지겠지?'

속으로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렇게 누어도 불편하고 저렇게 누어도 불편합니다.

엄지손가락이 계속 욱신거렸습니다. 예리한 통증까지 느껴졌습니다.

한참을 뒤척였습니다.


몇시가 되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화징실도 가고 싶고 해서 화장실에 갔습니다.

그리고 거실로 나왔습니다.


약 찬장에서 뒹구는 타박상연고를 엄지손톱부위에 발랐습니다.

'생각보다 아픈데?'

참을 성이 없어진 건지 아니면 원래 참을 성이 없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진짜 아픈건지 분간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진통제 2알을 먹고 다시 침대에 누웠습니다.

와이프는 곤히 잠 들었습니다.

와이프가 깨지 않게 조심해서 이불을 덮었습니다.


진통제의 기운이 몸에 퍼지기를 기다렸습니다.

살짝 괜찮아진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엄지를 움직여 보았습니다.

아직 아프걸 보니 좀 더 기다려야 할 듯합니다.


'이런 멍청한 실수를 하다니, 좀 조심할 걸..'

하는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을 가지고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어'라고 생각하는 것을 '후회'라고 합니다.

'후회 後悔' 나중에 뉘우친다라는 뜻이네요

'회 悔' 마음'심'에 늘, 매번이라는 뜻의 '매'가 합해진 것이 '회'입니다.

뉘우침은 '마음으로 늘 하는 것'이라는 뜻인데 참 그럴듯 합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뉘우친다고 안 벌어진 일이 되지 않으니 다음에 조심하는게 더 나을 듯 합니다.


어떻게 잠이 든 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잠은 언제나 그렇게 듭니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기 전에 왼손 엄지 손가락을 살짝 움직여 봅니다.

'어? 아직 아프네? 줸장'


이렇게 아침을 시작하는 것은 딱히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동네 정형외과를 검색을 해서 토요일 진료가 있는 지 확인을 했습니다.

다행히 오전진료가 있습니다.


욱신거리는 엄지를 조심하며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뼈가 뿌러졌나?'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병원 갔다 올께"

와이프에게 말했습니다.


"많이 아파?"

"좀 많이 아프네, 아파서 진통제 먹고 잤어"

와이프에 살짝 불쌍한 듯 말했습니다.

"부러진 것 같아?"

"그러게 좀 아프네, 괜찮아. 부러졌으면 골절진단비 30만원! 아싸"

"나 참"

와이프가 한심한 듯 웃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뼈는 멀쩡합니다.

어차피 아픈거 부러졌어도 나쁘지 않은데 말입니다.

좀 더 쎄게 차문을 닫을 걸 그랬습니다. 후회가 됩니다.

엉덩이 주사 2대를 맞고 손가락지지대를 하고 병원에서 나왔습니다.


엄지 손가락이 엄청 커 졌습니다.


내 엄지손톰이 빠지는 꿈을 꾸었다며, 아침 댓바람부터 어제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걱정된다고 말했지만 낄낄거리고 있는 것을 난 다 알고 있습니다.


친구에게 엄지손가락 사진을 찍어서 보냈습니다.

'나보다 엄지 손가락 커? 까불지마'라는 문자와 함께...


집에 와서 잠깐 아침을 먹고, 토요일에도 출근하는 불쌍한 와이프를 버스정류소에 내려 주었습니다.

유턴을 해서 차를 돌리면, 길 건너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와이프가 보입니다.

와이프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길 건너 와이프가 나를 봅니다.


"엄지가 엄청 커졌어!"

"잘 났다"

"내 엄지 잘 보여?"

"아주 잘 보인다!"

"따봉!!"


엄지척을 날리며 집으로 왔습니다.


오늘은 엄지척을 마음껏 날리는 하루가 될 듯 합니다.

"따봉"입니다.


그리고 친구도 당분간 나에게는 까불지 못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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