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계란말이 1인분 되나요?
단대앞 '푸근한 식당'으로 갔습니다.
처음 이 식당에 갔을 때, 1인분 메뉴가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메뉴를 보고 무엇을 먹을지 상당히 고민했습니다.
내가 먹고 싶었던 것은,
'고등어구이'였지만 '2인분'부터 였고
인기메뉴인 '계란말이'도 '2인이상'이였습니다.
그래서 1인분이 가능한 '된장찌게', '김치찌게', '청국장', '육개장'중에 선택해야 했습니다.
'된장찌게'는 시켜 먹어본지가... 음... 기억이 나지 않아 패스,
'김치찌게'는 음... 일단은 선택사항중 하나로 남겨두고,
'청국장'은 바로 패스,
'육개장'은 음... 이것도 선택사항으로 남겼습니다.
이제 '김치찌게'와 '육개장', 둘 중 하나만 선택하면 됩니다.
고민을 하다 '김치찌게'를 시켰고 신김치로 만든 찌게가 싫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와! 맛있다'도 아니였기 때문에
김치찌게를 먹는 내내 다음엔 육개장을 시키기로 몇 번이나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와서는 반드시 육개장을 시켰고, 그리고 한 동안 육개장만 먹었습니다.
누가 보면 '육개장을 참 좋아하는구나'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1인분 메뉴중, 사실 4개의 메뉴중 마음에 드는게 육개장이었다고,
할머니 사장님에게 이야기 하지는 않았습니다.
마음같아서는 '고등어 구이'를 먹고 싶다고, 1인분은 안되냐고 데모라도 하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다른 식당에서 고등어구이를 시키면 보통 고등어를 반으로 가른 반쪽이 나왔지만,
이 식당에서는 고등어 한마리가 통채로 나왔습니다.
반으로 갈린 고등어 한마리가 통채로 구워져,
속살에서 기름이 자글거리며 옆 테이블에 놓여집니다.
그럴때면, 옆 테이블 손님들에게
'단지 둘이 왔다는 이유만으로, 당신들이 이 '고등어구이'를 먹을 자격이 되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또 고등어구이를 먹을 수 있음에 진정,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복에 감사한다면, 주위의 사람에게 나눌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고등어구이 한점만 주시면 안될까요?'라고 침이 흘러내리지 않게 조심해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럴때면, 나의 육개장이 그렇게 초라해 보였습니다.
그 '고등어구이'만 아니였어도 내 '육개장'이 이렇게까지 초라해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맛있던, 그래서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았던 내 '육개장'이었는데 말이죠.
이를테면, 학창시절 방학때 부모님이 사주신 스펙스 운동화같습니다.
너무 좋아서 마치 신발에서 빛이나 달도 별도 없는 밤에 신어도 동네가 환해 질것 같았습니다.
새 신을 신고 뛰어 보자 폴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을듯 했습니다.
하지만 개학을 하고, 학교에서 보았던 친구의 나이키 운동화...
내 스펙스 운동화를 '오징어'로 만들었습니다.
난 '오징어'를 신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발에서 오징어냄새가... 쿨럭 쿨럭
다행스럽게도, 식당할머니 역시 혼밥 민주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는지,
'2인이상'이라 손에 닿을 수 없었던 메뉴, 특권층만 누릴 수 있었던 메뉴가,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나 광복을 누렸던 조선의 봄처럼,
'1인주문가능'으로 바뀌었던 그날, 그 감동은 잊을 수도 믿을 수도 없었습니다.
메뉴의 글을 읽었지만, 믿을 수는 없었습니다.
"사, 사, 사장님, 진짜 고등어구이 1인분 되는 거죠?"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요즘은 혼자와서 많이 물어봅디다"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난 그냥 속으로만 생각했는데, '1인분 주문가능'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동료 혼밥인의 수고와 노력 덕분에 나도, 이제, 혼자서 '고등어구이'를 누리는 감격의 날을 맞이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혼자서 고등어구이를 주문했습니다.
큰 네모난 알루미늄 쟁반에 6가지 반찬과 밥 한그릇과 계란국,
그리고 '고등어구이'가 나왔습니다.
반찬으로 말할 것 같으면,
간장과 고추장양념으로 볶은 아주 살짝 적당히 매콤한 오뎅볶음,
안쪽까지 깊게 조려지지 않아 감자의 서걱거리는 식감이 살아있는 감자조림,
넉넉한 양념의 배추의 숨이 아직 남아있는 겉절이,
럭셔리한 왕가의 자주색을 가진 가지무침,
부끄러운 듯 분홍빛 잔뜩 머금은 건새우와 진 초록의 마늘쫑볶음,
그리고 고추가루 양념으로 버무려졌지만 보이와는 다르게 상큼한 오이소배기입니다.
이 6첩 반찬만으로 밥 한 그릇, 뚝딱! 먹을 수 있을 듯 합니다.
주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오늘은 반찬의 하나인 밤새 내린 하얀눈처럼 뽀얀 흰쌀밥,
그리고 흰자와 노른자가 적당히 잘 섞인 계란국입니다.
'6첩 반찬'과 '밥과 국'만으로 이미 훌륭한 한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주인공'인 고등어를 빠트릴 수는 없습니다.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멀리서 왔습니다.
한 때 바이킹과 함께 북해를 주름잡던, 고대 전사의 후손, 노르웨이산 고등어입니다.
등의 무늬가 굵고 선명하며, 날씬한 유선형 체형의, 속살이 약간 붉은 노르웨이산 고등어입니다.
노르웨이의 가을, 딱 그맘때쯤 고등어가 인간에게 잡혀줍니다.
그리고 급속냉동되어 사철 우리의 밥상에 오르는 '노르웨이산 고등어'입니다.
DHA가 풍부해서 아이들 성장에도 좋고, 혈중 콜레스트롤 수치를 낮추어 주며, 심장계통의 병을 예방해주기도 합니다. 단백질 함량도 높고, 비타민 A와 B2도 들어 있어, 원기 회복에도 좋습니다.
물론 너무 많이 먹으면 중금속때문에 좋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점 때내어 와사비간장에 찍어 입안에 넣으면,
와사비간장과 고등어기름이 입안에 샤페트처럼 퍼지고,
그 속살은 입안에서 잘게 부셔서 혀의 온 미각세포를 자극합니다.
그러면 중금속따위는 그냥 잊혀집니다.
'고등어구이, 1인분' 평등과 투쟁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계란말이'는 '2인이상'으로 일부 특권층만 누리는 메뉴입니다.
누군가의 수고와 노력이 '1인분 주문가능'의 시대를 맞이하게 했으니,
나도 이제 누군가를 위해 나의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다짐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메뉴가 평등해지는 그날이 올때까지, 나는 나의 투쟁을 할 것입니다.
"사장님, '계란말이 1인분' 되나요?"
"안됩니다"
"아,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