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하는 나이

'혹'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 어른은 되지 못했습니다

by 김현부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믿기지 않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정말 믿기지 않습니다.


어떨땐 미치겠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미치지는 않네요.

아니 어쩌면 이미 미친거인지도 모릅니다.


나이, 40을 넘어 50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정말 믿기지 않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실감이 나지를 않는다'이겠네요.


정말,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정말 믿기지 않아, 다시 한번 더 말해 봅니다.

정말!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이미 50이 되신 분들은, 이 기분을, 잘 이해하실 것 같고

같이 40을 지나가는 나나 내 친구들도 잘 알고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30이거나 20인 분들도

10년 혹은 20년이 지나면 나와 비슷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바램같아서는 나처럼 실감못하는 멍충이가 되지 말고,

나이를 실감을 하는 멋진 사람이 되면 어떨까? 하는 기대를 살짝 해 봅니다.


나이 40을 불혹이라 부릅니다.

"왜 나이 40을 불혹이라 부르지?" 궁금해졌습니다.

할 일이 없는 것도, 그리고 호기심 많은 사춘기도 아닌데,

이런 걸 보면 쓸데없이 궁금해 집니다.


그냥 넘어가면 되는데,

별 것도 아닌것 같은데,

모르고 넘어가자니 살짝 신경이 쓰입니다.


말하자면, '새로 입은 노란 셔츠에 조금 흘린 김치국물'같이 말입니다.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나 조차 눈여겨 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 그런 얼룩말입니다.

사람들이 그것만 쳐다보는 것같이 신경쓰여 겉옷으로 가려봅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김치국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겉옷으로 가려도, 김치얼룩은 그대로 있습니다.

옷에서 김치냄새가 나는 듯 합니다.

그리고

집에 가면 매의 눈을 가진 이에게 칠칠맞다고 혼이 날 사실 역시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이 정도 얼룩으로 맞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래서 네이버를 찾아 보았습니다.

불혹?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것’이라는 뜻이랍니다.

너무 유식한 말이라, 곰곰히 생각해서 내가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바꾸어 보니,

'혹 아님', 그러니까 ‘혹하지 마라’라는 뜻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 40이 넘었지만 여전히 혹하는 걸 보니,

‘나이 마흔이 되면 불혹이 된다’라는 뜻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은 나를 보아도 그렇고, 같이 마흔이 넘은 친구들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정말, 정신 못차리는 40중반들입니다.

바보를 비하하는 말은 아니지만, 하는 짓은 상당히 '바보'비슷합니다.


나는 내 친구들이 참 바보같습니다.

언제나 난 내가 그 중에서 제일 덜 바보같은 사람이라 자부했습니다.

지난번 친구들과 만났을때 이런 이야기를 하니, 맙소사!

그들도 똑같이 '자기가 제일 덜 바보같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참 바보들입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내가 제일 덜 바보같다고 자신합니다.


어쨌든, 이렇게 바보같은 나는 여전히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깁니다.

판단이 흐립니다.


세상일이 무엇인지, 세상일이 아닌것은 무엇인지,

정신이 있는지 없는지, 정신이 있기나 했었는지,

그 정신을 빼앗겼는지 아님 처음 부터 가지고 있기는 했는지,

그래서 판단이 흐린건지, 맑은 건지,

아님 판단이라 것을 할수나 있는 건지도 모르는 상태정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세상을 알것 같기도 하다가, 내일이었던 날이 오늘이 되면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날이 계속 반복됩니다.

정신을 차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한 40년 넘게 세상에 살아보니, 이런 상황에 상당히 잘 적응한 것 같습니다.

공기에도, 중력에도, 그리고 사람들에게도 말입니다.

그냥 그럴듯하게 움직이고, 그럴듯하게 짖거리면 하루는 무난하게 지나갑니다.

그리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같이 있을때는, 더 그럴듯하게 짖거리면 됩니다.

그래서 이 나이가 되면 너도 나도 짖거립니다.

세상이 시끄러운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하루가 허무해집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집에 가면 됩니다.

가끔 집이 없는 날에는 친구라도 찾으면 됩니다.

그래서 괜찮습니다.


부모와 살았었고,

학교에 다녔었고 (지금은 다른 이유로 다니고 있지만)

어디 출신인지도 모르는 나를 품어주는 착한 (지구인) 와이프를 만나,

적어도 반은 지구인인 딸 둘을 낳아 살고 있으니,

분명 잘 적응해서, 잘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착한 지구인 와이프는 내가 뭔가 특이하다는 것을 이미 눈치챈 듯 합니다.

인정이 많은 지구인 와이프는 나를 그냥 불쌍하게 여겨줍니다.

사실 내가 지구인인지, 아닌지, 나도 잘 모릅니다.

나 스스로 내가 특이하게 느껴질뿐입니다.

아니 너무나 절망적으로 평범한 지구인이기에,

이 지겨운 평범함을 벗어나기를 간절히 갈망하는,

그래서 특이하게 되고 싶은 소망을 가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40년 넘게 세상에서 살다보니, 점점 분명해지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은 여전히 낯설다'라는 것입니다.

40년 넘게 살았지만 세상은 계속 낮선 곳입니다.


그래서 낯이 가려집니다.

낯을 가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낯을 가립니다.


혹시 내가 낯을 가리더라도 당신이 싫어 그런것이 아니니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냥 내가 내 낯을 가리고 싶을 뿐입니다.

세상이 낯설어 그렇습니다.


이 놈의 세상은 하루도 같은 날이 없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세상에는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습니다.

그러니 무슨 안정감이 있을 수가 있나요?

이 사실을 곧게 씹어야 하는데, 너무 딱딱해서 씹으면 이가 다 부러질 것 같습니다.


매일 보는 풍경이지만, 오늘 다시 새롭습니다.

매일 맞이하는 아침이지만, 오늘은 뭔가 다릅니다.

매일 만나는 사람이지만, 오늘 보는 당신은 어제의 당신과는 뭔가 다른 당신입니다.

이 미묘한 차이가 나를 낯설게 합니다.


깨물어 씹지 못하기 때문에, 입안에 넣고 녹여 봅니다.


매일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어제보다 쬐금 더 재미나는 것 같습니다.

매일 맞이하는 아침이지만 오늘의 공기는 어제의 공기보다 좀 더 신선한 듯합니다.

매일 마주하는 사람이지만, 오늘 보는 당신은 어제보다 좀 더 반갑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가 주는 미묘한 맛을 40년이 지나 알게 되니, 나는 참 미련한 사람입니다.


오늘도 깨물지 못하는 하루를 천천히 녹여봅니다.

청포도사탕같은 단맛이 입안에 번집니다.


'뭐가 별나서 그러느냐?' 적당히 살아라!'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맞습니다.

별날것이 없습니다.

별이 좀 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정말 별이 좀 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밤하늘 별을 보며, 맥주 한잔하며, 두고 온 내 고향 생각도 좀 하려합니다.


이야기가 딴데로 흘러버렸습니다.

불혹을 이야기하다 별이야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나이 40은 '혹'할것이 많은 나이가 아닌가?합니다.

그러니 '혹'하지 마라 즉 '불혹하라'라고 말하는 것이겠죠?


돈에 '혹'하는 나이

명예에 '혹'하는 나이

색에 '혹'하는 나이

권력에 '혹'하는 나이

그리고 뭐든간에 '혹'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옛 선인들이 '나이 40에는 혹하지 마라’말한 이유가 있겠지요?


나이 40에 '혹'하면 추합니다.

나이 40에 '혹'하면 추잡합니다.

나이 40에 '혹'하면 추잡스러워집니다.


아직 나이 40이 넘은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아 다행이기는 합니다만

아니 아니 40을 실감하지 못하니 '혹'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혹'할까 조심해야겠습니다.


‘나이 40, 어른이 되었다’라고 생각하면 큰일날 것 같습니다.

물론 나만 그런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당연히, 나만 그런 것일 것입니다.

나는 40을 지나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하지만 조만간에 어른이 되고 싶기는 합니다.


그래서 조용히 오늘 지나는 하루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녹여봅니다.

이가 썩어 빠질지도 모르나, 정신 못차리고 '혹'해 추잡해 지는것 보다는 낫겠지요?


맥주 한잔 마시며, 오늘은 별이 나왔나? 하늘 한번 쳐다봅니다.

가로등 불빛 때문에 별은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의리있는 달은 나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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