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풀밭

by 김현부

거실 창 넘어, 열평 남짓한 발코니가 있다.

눈이 막 눈이라 열평이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긴하지만 어쨌든, 아주 작은 정원이라 불러도 괜찮을 듯한 그런 곳이다.


발코니 문을 열고 나오면 왼쪽 모통이에 뒤틀린 모양이 꽤 근사한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얼마 전 집주인이와서 잔가지를 다 잘라 놓아서 앙상하게 보였던 그 소나무,

하지만 유월중반을 지나 여름으로 가는 지금, 가지치기를 당한 소나무는 오히려 시원해 보인다.

나도 머리카락을 잘라야겠다.


그 소나무 주위에는 빗자루를 만들때 쓰면 좋을 듯한 나무가 있다.

이 나무를 '나무라 부르는 것이 맞나?' 싶기도 하다.

'적어도 나무는 뿌리에서 나름 튼실한 줄기가 나오고,

그 줄기에서 가지를 뻗어 잎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싸리 빗자루를 꺼꾸로 박아 놓은 듯한 이 나무는,

땅에서 가느다란 여러줄기가 나와 어떻게 보면 풀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줄기를 만져보니 튼실한 나무임이 틀림없다.


싸리 빗자루를 꺼꾸로 박아 놓은 듯한 나무 옆에는 상당히 낮익은 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봄에 꽃이 핀다.

연산홍 아니면 철쭉인 것 같은데, 지금이 초여름이라 꽃이 없으니 무슨 나무인지 알 길이 없다.

내 수준이 이 정도라, 철쭉인지 연산홍인지 모를 나무에게 미안하다.


담장을 따라 장미넝쿨이 나름 우거져 있는데, 지난달만해도 상당히 볼 만했다.

우아하게 꽃을 피운 장미넝쿨만큼 볼만한 것도 드물 것이다.

햇살이 뜨거워진 지금의 장미는 추하기 그지없다.

썩어 문드러져가는 꽃을 가까스로 붙들고 있는 장미나무가 안쓰럽기는 하지만,

장미도 장미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을테니 쓸데없는 동정이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보기에 딱해 꽃을 만져보니 푸석해진 꽃잎이 손바닥에 부서진다.

물이라도 뿌려주고 싶지만 그런다고 장미꽃이 다시 살아날 것 같지는 않아 그만 두었다.


넝쿨장미옆에는 꽃잎이 동그란 장미가 아직 생생하게 피어 있다.

벌 몇마리가 부지런히 이 꽃, 저 꽃을 돌아다닌다.

분홍 꽃잎속, 연분홍 속잎을 내 집 드나들 듯 날아다닌다.


데크바닥을 기어다니던 개미 몇 마리가 뭐가 궁금한지 다리를 타고 오르내린다.

스물 스물한 간지러움만 없다면 그냥 두고 싶지만 참지 못하고 조심스레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갑자기 발가락사이가 따끔했다.

'아까 그놈인가?'

뭐가 불만인지 내 발가락 사이를 깨물고 있었다.


발코니 데크에는 야외용 의자 몇개와 파라솔 테이블이 있다.

덕분에 쨍하는 태양아래서 바람을 맞고 여유있게 시간을 흘려보낸다.

사람이 만든 것도 나름 쓸모가 있다.


아까 그 동그란 장미꽃나무옆에는 감나무 몇 그루가 있는데,

작년 봄에 이 나무 역시 집주인이 와서 가지를 쳐 버렸다.

그래서 그랬는지 작년 가을에는 감을 주지 않았다.


나는 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별 상관이 없지만,

감을 좋아하는 와이프나 감이 익은 것을 귀신같이 아는 까치에게는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감나무 밑에는 풀들이 자라고 있다.

잔디도 있고 뼈대 있는 가문의 풀도 있는 것 같은데 정리를 안하고 그냥 두었더니 그냥 풀밭이 되었다.


몇일전, 거실 창 넘어로 무성하게 자란 풀밭을 보며,

'조만간에 풀을 잘라야겠군'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막상 나와서 풀밭을 보니 마음이 달라졌다.


멀쩡하게 계절을 따라, 열심히 잘 살고 있는 풀을 잘라 버린다는게 마음에 걸렸다.

안면이 없다해서 뽑고 베이버린다는게 야만스러웠다.

'반갑다, 넌 누구니?'

인사는 못 할 망정 초면에 베이고 뽑히는 풀의 입장에서 보면 황망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한참동안 그냥 풀밭을 바라보았다.


'잔디밭이 아니면 어떤가?'


잔디씨를 품은 잔디가 바람에 흔들린다.

강아지풀이 옆에서 같이 춤을 춘다.


거실 창 넘어로 보이던 풀밭을 그냥 두기로 했다.

집주인이 보면 정원관리를 안하다 말 할수도 있겠지만,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풀들의 심정을 알면 내 마음도 이해하리라.


잔디깍는 기계 대신 풀밭에 시원하게 물을 뿌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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