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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부 Jan 26. 2020

돌고래 이야기

돌고래에게 영혼이란 것이 남아 있기는 할까?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본 돌고래 이야기이다. 


배경은 일본의 한 시골 마을이었는데 이 마을의 주업은 고래사냥이었다. 


여러 배들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해안의 움푹 파인 막다른 곳으로 돌고래를 모으면 돌고래들이 도망갈 곳은 없어진다. 그럼 어부들은 여유롭게 끝이 날카로운 긴 쇠꼬챙이로 고래의 척수를 끊어 버린다. 등어리에 난 구멍에서는 피가 쏟아지지만, 어부는 능숙하게 플라스틱 마개로 피가 흐르는 구멍을 막아 피가 바다에 번지지 못하게 하였다. 


이전에는 돌고래의 척수를 뚫은 구멍을 막지 않았기 때문에 고래사냥철이 되면 해안가가 말 그대로 피바다가 되었고 고래들은 피바다를 허우적거렸다. 그 모습을 몇몇 기자들이 그 피바다 사진을 보도하였고 그 사진을 본 전 세계의 사람들은 경악하였다. 


그 일이 벌어진 이후 야비한 어부들은 피가 바다에 번지지 않게 하려고 척수를 뚫은 구멍을 플라스틱 마개로 막아 버린 것이다. 쇠꼬챙이에 척수가 끊어진 돌고래는 몇 번 움찔거리다 하얀 배를 보였다. 인간들이 하는 짓을 하늘에 항소하듯 말이다. 



일부 보기에 좋고 생기 넘치는 돌고래들은 죽이지 않고 가두리에 가두어 세계의 수족관으로 그리고 돌고래쇼장으로 판다고 했다. 수족관이나 돌고래쇼장으로 팔려나간 일부 돌고래들은 먹는 것을 거부하며 굶어 죽기도 하고 물 위로 나와 숨을 쉬는 것을 포기하며 자살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야생에서 돌고래는 약 30년에서 40년을 살지만 수족관이나 쇼장으로 팔려나간 돌고래의 수명은 약 3년에서 4년이라고 했다.


돌고래를 가두는 가두리가 있는 마을에 태풍이 불었다. 


마을은 물에 잠겼고 바람에 간판이나 지붕이 날아가는 큰 태풍이었다. 이렇게 큰 태풍이 불었으니 바다라고 해서 온전하지는 않았다. 태풍은 지나갔지만 돌고래를 가두고 있던 몇몇 가두리가 부서졌다.하지만 부서진 가두리에 있던 하지만 이제 자유로워진 돌고래들은 무슨 이유인지 도망가지 않고 가두리에 갇힌 돌고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왜 떠나지 않았을까? 

왜 떠나지 않고 주위를 맴돌며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고 있었을까? 

가두리에 갇혀있던 돌고래가 가지 말라고 했을까? 

아니면 너를 두고 내가 어떻게 가냐며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고죽자라고 말했을까? 

가두리에 갇힌 돌고래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하는 내 새끼였나? 

그것도 아니면 내일모레 결혼을 약속한 사랑하는 사이였나? 


돌고래의 언어를 모르는 나는 답답하기만 했고 심지어 미련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늘이 내린 듯한 자유보다 가두리에 갇혀 있는 돌고래가 그들에게 더 소중한 존재임이 틀림없었다.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살면 된다든지 혹은 일단 나부터 살아야지 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돌고래는 다른 돌고래가 갇혀 있는 가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는 아주 잔인해진다. 돌고래의 척수를 날카롭고 긴 쇠꼬챙이로 끊어버리고 피가 철철 흐르는 쇠꼬챙이 구멍을 플라스틱으로 막아버리는 주도면밀한 치밀하고 야비한 어부처럼...


"미안하지만 난 돈을 벌어야 하거든..."


인간에게 돈이 모든 가치의 알파요 오메가, 시작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사람의 이런 가치관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돌고래에게 사람들이 저지르고 있는 돌고래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행위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상상이 가능해야 무섭다. 상상할 수 없는 것은 비현실이 되기 때문에 공포라는 감정을 그 사건에 이입하기는 사실 불가능해진다. 


끝이 아주 날카롭고 긴 쇠꼬챙이가 가족과 친구의 척수를 끊을 때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으로 인해 무슨 일이 벌어지는 돌고래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치 블랙홀에서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양자가 입자이기도 하고 파동이기도 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과 같이 말이다. 


돌고래는 인간이 왜 사랑하는 내 새끼의 등에 쇠꼬챙이를 쑤셔 넣는지 알 수가 없다. 만약 인간이 돈 때문에 사랑하는 내 새끼에게 그 짓을 하는 것이고 그러면 내 새끼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돌고래는 정말 미치고 환장할 것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어떻게 그럴 수가...


아니 어쩌면 인간이 돌고래에게 하는 짓을 인간이 인간에게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인간의 미개함에 슬퍼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인간을 납치해 인간의 장기를 꺼내어 돈으로 바꾸는 말도 안 되는 미개한 짓을 말이다. 그리고 그 미개함이 학교라는 곳에 그대로 있는 것을 보면 경악할 것이다. 우리는 돌고래와 같이 슬퍼해야 할지도 모른다. 


돈이라는 가치를 위해 자신과 자녀의 영혼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좋은 위치에 있기 위해 친구를 디딤돌로 삼아 밟고 오르는 학교라는 시스템을 보면 돌고래는 인간의 미개함에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좋은 대학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기 위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의 세월을 가두리에 가두어 버리는 비정한 부모의 잔인함에 놀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돌고래가 인간에 물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 돈이라는 것을 많이 주는 직장에 취직하거나 돈을 많이 버는 사업을 한다 칩시다. 그럼 12년을 가두리에 갇혀 망가진 아이들의 영혼이 온전하기는 한가요? 아니 아이들에게 영혼이라는 것이 남아있기는 한가요?"


성공이라는 저울에 아이의 영혼을 달아 그만큼의 돈으로 아이에게 돌려준다고 해서 영혼을 잃은 아이가 과연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친구와 가족을 다 죽이며 데려온 돌고래를 훈련하면 돌고래는 호각 소리에 맞추어 공중회전을 하며 물보라를 일으킨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손뼉을 친다. 


그 돌고래에게 영혼이란 것이 남아 있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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