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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부 Jan 01. 2020

20200101

통장 잔고는 쌓이지 않지만 나이는 쌓인다.

통장 잔고는 쌓이지 않지만 나이는 쌓인다.


재산 목록 1호가 지금까지 먹은 나이라면 우스운 것일까? 한심한 것일까?

나무에 새겨지는 나이테처럼, 시간은 내 눈가에, 희끗한 몇 가닥의 머리칼에 새겨진다.


슬프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너무나 기다려진다.


울창한 숲에 서 있는 아름드리 나무처럼, 옆 나무와 벗하여 숲을 만들어 가자.

나뭇가지 뻗으면 풀들이 자라고 들짐승 쉴 수 있는 적당한 그늘정도는 만드는 나무가 되자.

우리들 만든 숲에는 아무리 비가 와도 홍수가 나지 않고, 

아무리 가물어도 타는 목 축일 작은 옹달샘은 찾을 수 있게.

태풍이 불어도 이 숲속이면 안전하다.

찬바람 불어 가을되면 오색찬란 울긋 불긋 단풍이 덮이고, 

칼 바람 부는 겨울이 되면 따뜻한 모닥불 피울 수 있게 

큼지막한 팔뚝 몇개 잘라주어도 넉넉한 나무가 되자.

그런 숲속 아름드리 나무가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통장 잔고는 쌓이지 않지만 나이는 쌓인다.

나무에 새겨진 나이테처럼, 시간은 내 눈가에, 희끗한 몇 가닥의 머리칼에 새겨진다.


아직은 어리다.

작은 비에도 뿌리가 보이고, 조금만 가물어도 죽을듯 목이 탄다.

살랑 바람에 부러질듯 몸이 휘청거리고 가을 바람에 몇 안되던 잎사귀가 떨어진다.

된 바람 부는 겨울이 되면 나무인지 넝쿨이지 알지 못하게 초라해져 불쏘시개로도 힘들다.


숲속 아름드리 나무가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통장 잔고는 쌓이지 않지만 나이는 쌓을 수 있다.

차곡 차곡 나이를 쌓는다.


팔 뻗으면 손바닥만한 작은 그늘정도 만들수 있는 나무는 되어야지.

바람 불면 잠시 붙들수 있는 나무는 되어야지.

몸통 잘라내면 한 며칠정도 따뜻하게 태울만한 나무는 되어야지.


잘려진 그루터기에 쌓아둔 나이보면 웃을 수 있으려면,

나그네 지친 다리 쉴 만한 그루터기가 되려면...


통장 잔고는 쌓이지 않지만 나이는 쌓인다.

내 눈가에, 희끗한 몇 가닥의 머리칼에 나이가 쌓인다.


재산 목록 1호가 지금까지 먹은 나이라면 한심한 것일까? 행복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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