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부 Dec 31. 2019

2019년 12월 30일, 날을 지우다

하루에 붙어 있던 가격표를 떼며

2019년 12월 30일, 날을 지운다.



12월31일은 한해가 끝나는 날이라 특별하고

1월 1일은 한해의 첫날이라 특별하다.


12월30일은, 그냥 12월 30일이다.

특별하지도 색다르지도 않은 그냥 12월 30일.


여느날과 다를 것 없는 이 날이 빨리 지나고 

특별한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12월 30일, 

새로울 것도 없고 특별한 것도 없어 실망스럽다.

새로울 것도 없고 특별한 것도 없는 나 마냥 실망스럽다.


뭐가 달라져 있을줄 알았는데,

나는 다시 그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12월 30일 같은 나의 하루들,

끝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작은 더욱 아닌 나의 날들...


날을 지웠다.

숫자를 지웠다.

날에 아무렇게나 막 써 놓은 숫자를 지웠다.


줄을 세우듯 하루에 메겨 놓은 번호를 지웠다.


때 묻은 아이의 얼굴을 씾기듯,

목에 수건을 둘리고 하루에 묻은 번호를 지웠다.

하루가 그 뽀얀 얼굴을 내민다.


내일이었는데 오늘이 되고 어제가 될 하루가 보였다.


내일은 언제나 과거이고

오늘은 언제나 지금이며

어제는 미래가 된다.


나의 하루는, 내일이었는데 오늘이 되고 어제가 된다.


나의 어느 하루도 내가 무심히 흘려 보낼만큼 가볍지 않고,

덜 특별하지도 않고, 덜 새롭지 않다.


주머니에 구겨져 버려지기를 기다리는 쓸모없는 카드전표처럼

막 대할 수 없는 무겁고 소중한 날이다.


하루에 메겨진 번호를 지우니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시간은 언제나 그렇게 흘렀는데

가격표처럼 붙여진 숫자들때문에

그 숫자에 눈이 멀어 보지 못했을 뿐


하루에 붙여진 가격표를 때고 하루를 본다.


나의 하루는, 내일이 되고 오늘이 되어 다시 어제가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할머니의 하얀 속치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