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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부 May 04. 2020

딸아이의 전두엽은 내가 책임진다.

딸아이 전두엽 발달 프로젝트

전두엽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전두엽은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표현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창의력, 그리고 감정조절을 관장하는 뇌의 한 부분으로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과 같은 전자기기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은 전두엽보다 시각처리와 시각정보 인식을 담당하는 후두엽 부분이 발달한다'라는 기사였다.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 추상적 사고 능력, 행동과 감정의 조절, 창의력, 공감능력을 주관하는 전두엽은 뇌에서 가장 늦게 완성된다 등에 관한 기사를 읽다 보니 작은 딸아이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그리고 큰 딸아이가 작은 딸아이의 나이일 때 집중력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두 딸이 이해되다는 말은 아니다. 


계속 기사를 읽었다. 청소년기는 전두엽이 발달하지 않은 시기라 중독과 충동, 난폭한 행동 등의 문제는 전두엽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이유가 컸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사춘기적 나의 방황은 '사랑받지 못함'에 대한 결핍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나의 뇌가 덜 성숙해서 그렇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사춘기 나의 방황의 정당성을 상실하고 대신 미성숙의 부끄러움만 남겨 주었다.


그렇게 계속 기사를 읽으며 이제 중2가 된 작은 딸의 전두엽을 발달시키는 것이야 말로 편안한 나의 중년을 보내는 길임을 깨달았다. 그럼 어떻게 작은 딸의 전두엽을 발달시킬지를 고민했다. '전두엽은 감각적 반응보다 어떤 것을 관찰하고 곰곰이 생각하여 판단할 때 발달한다.'라는 글이 무심하게 적여 있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상상을 해도 관찰하며 곰곰이 생각하는 딸아이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작은 딸과 대화를 하다 보면 딸아이의 생각이 입으로 나오는 데는 천분의 일초가 채 걸리기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면 나올 리 없는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오는 걸 지켜보면서 나의 정신은 황당과 당황 그 사이 어딘가에서 방황하곤 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딸아이의 생각이 머리에 머무르는 시간이 짧아지는 것 같다는 불안한 확신이었다. 공포영화에서 문을 열면 틀림없이 살인마가 튀어나오는데 그걸 알면서 문을 여는 어리석은 사람 같다고나 할까?! 


고민 끝에 책을 읽기로 했다. 혼자 책을 읽게 내 버려두면 절대 책을 읽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작은 딸을 소파로 불러내었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방에서 편하게 읽는다고 얼마나 때를 쓰는지... 그러면 틀림없이 딴짓을 하는다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도 책 한 권을 준비했다. 아이는 '오 헨리 단편선을 손에 들고 나왔고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을 들고 나왔다. 


아주 좋은 출발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현실 불가능한 장면을 연출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딸아이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책을 읽어 나갔다.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아이의 전두엽이 쑥쑥 자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나의 마음은 뿌듯함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책을 읽어 나갔다. 한 15분쯤 지나 아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 표정은 진지한 질문?'


'아니 벌써 이런 시간이 오다니!' 드디어 딸이랑 토론이라는 것을 할 것 같은 기대감이 밀려왔다. '이왕이면 인생에 관한 진지한 질문이면 좋겠는데.. ㅎㅎ'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딸아이의 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빠!, 나... 배 아파! 똥 싸러 갈래!" 그렇게 딸은 진지한 표정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로 가는 길에 에일리의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 '몹시도 좋았다~ 너를 지켜보고 설레고~"하고 노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역시 멋지다. 뭘 기대하든, 내 예상을 정확하게 비껴간다. '저 정도 감성이면 전두엽은 천천히 발달시켜도 되겠지? 뭐...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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