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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부 Apr 30. 2020

정리가 필요한 책상

이번 생에 가능하기나 할까?

주위 사람들 중 정말 정리를 잘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 '이게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리를 잘하는 사람들이다. 내 가족이나 친구 중에는 음...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내 가족이나 친구 중에 이런 부류의 사람은 없다.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컴퓨터 파일 폴더를 보고 그 깔끔함에 그리고 그 완벽에 가까운 정리 체계에 존경심과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충격에 휩싸여 집으로 오자 마자 컴퓨터 파일과 폴더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문서를 종류대로, 날짜별로, 연도별로 모으고 영상이나 이미지 파일도 그런 식으로 정리했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정리가 되지 않는 파일들은 항상 존재한다. 지우기는 불안하고 그렇다고 딱히 필요도 없는 파일들이 그런데 고민 끝에 '정리가 필요한 파일'이라는 폴더를 만들어 그 폴더에 넣어 두었다.


'정리가 필요한 파일'이라는 폴더는 블랙홀과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어 컴퓨터를 떠돌아다니는 부유 파일들을 끌어당겨 삼켜버린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이 폴더의 파일수와 용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급기야 통제불능의 상태가 되어 버린다. 블랙홀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이 폴더 안에 무슨 파일이 있는지 찾기는 검색을 하지 않는 이상 그리고 백만분의 일 정도의 우연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그럼 나도 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어 결단을 내렸다.


'정리가 필요한 파일 2'라는 폴더를 만들었다. '그래, 다시 시작하자!' 그렇게 나는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내 컴퓨터에 '정리가 필요한 파일'로 시작하는 폴더의 수가 많아져 결국 두 자릿수를 넘게 되었다. '정리가 필요한 파일 1', '정리가 필요한 파일 2', '정리가 필요한 파일 3'... 결국 '정리가 필요한 파일 12'까지 만들어졌다. 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고민 끝에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떠 올랐다. '정리가 필요한 파일'로 시작하는 폴더를 모으는 폴더를 만들기로 했다. 천재적이다. 'untilted'라는 폴더를 하나 만들어 '정리가 필요한 파일'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는 폴더를 그 폴더에 담았다. 그리고 '정리가 필요한 파일'이라는 폴더들이 담긴 폴더의 이름을 '정리가 필요한 폴더'로 바꾸었다. 이쯤 되면 이 폴더는 쓰레기 매립지 수준이다. '정리'라는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아니 '정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 사용이 수치스럽기 그지없을 것이다.


'그냥 지워 버릴까?' 몇 번을 고민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맥주 한잔하고 술기운에 다시 시도했지만 술이 더 필요해서 좀 더 마시다 그냥 잠이 들어 버렸다. 자고 일어나니 '지우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휴~'라는 생각까지 드니 이건 거의 병적인 수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가끔 비주기적으로 정말 중요한 파일들은 백업을 하는데,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웃긴 건 '정리가 필요한 폴더'도 같이 백업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생에는 글렀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컴퓨터를 보다 숨이 막혀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보았다. '정리가 필요한 책상'이었다.


아무래도 '정리가 필요한 책상 2'를 장만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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