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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부 Apr 25. 2020

반만이라도 채워보자.
그걸로 충분하다.

만년필에 길들여지면서

아주 옛날에는 글을 쓸 때 만년필촉에 잉크를 묻혀 글을 쓰고 묻힌 잉크가 다 되면 다시 촉에 잉크를 찍어 

계속 글을 쓰고 했을 것이다. 


그런 만년필 하나 살까 고민도 해 보았지만, 그건 레트로 감성을 넘어 허세의 지경에 이르는 위험한 행동이라는 나의 직감을 믿어보았다. 그냥 만년필에 일회용 카트리지나 리필을 하는 컨버터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걸로 충분했다. 


만년필 일회용 카트리지는 아주 편했다. 가지고 다니기도 편하고 다 쓴 카트리지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새로운 카트리지를 ‘딸깍’하고 끼우면 다시 진한 잉크가 종이에 베여 글씨가 되었다.


그렇게 편하게, 아무 생각없이 일회용 카트리지라는 문명의 이기에 익숙해질 때쯤, 쓰고 버려지는 카트리지에게 미안해졌다. 쓰고 나면 버려지는 것들에게 미안해졌다. 쓰고 나면 버리는 것이 싫어 지기 시작했다. 


일회용 컵, 일회용 접시, 일회용 나무 젓가락, 아니 일회용 나무 젓가락은 빼기로 하자. 일회용 나무젓가락은 미끄러운 면 종류의 음식을 먹을 때는 너무 좋으니 일회용 나무젓가락은 빼기로 하자. 특히 짜장면을 먹을 때 나무젓가락이 없으면, 그게 없으면 너무 허전하니까!


나무젓가락을 반으로 쪼갤때면 '탁'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식사를 알리는 신호라고나 할까? 쪼개진 나무젓가락을 비비며 손이 따뜻해지고 나무젓가락으로 면과 짜장을 섞으면 침이 고인다. 나무젓가락으로 짜장면을 집으면 착! 감겨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짜장면은 일회용 나무젓가락이 아니면 왠지 허전하다. 그러니 일회용 나무젓가락은 빼자.


그런 별 중요하지 않은 생각을 하다 보니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품들 중에 최악은 일회용 숟가락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회용 숟가락은 집에서 쓰는 쇠숟가락에 비해 너무 미끄덩거리고 쓸데없이 허물렁거린다. 모양도 크기도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다. 그중에 제일 불편한 것은 일회용 숟가락이 입술에 닿는 느낌이다.


입술을 오무리는 얄팍한 압력에도 플라스틱 숟가락의 머리는 쉽게 휘어져 버리고 음식은 입안에서 지 마음대로 흩어져 버린다. 뭐, 흩어져 보아야 입안이지만, 내가 원하는 곳에 밥 알갱이가 놓여지지 않으면 웬지 마음이 허전해진다. 제일 허무한 것은 일회용 숟가락에 적응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한 며칠만 사용할 수 있어도 금방 적응할 것인데 태생이 ‘일회’라 적응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입에 맞을 기회조차 없는 일회용 숟가락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진지하게 고민도 해 보았다. 집에 있는 숟가락을 들고 다녀 볼까? 하지만 이 또한 도를 지나는 행동같기도 하고 매번 씻어야 하는 귀찮은 일이라 포기하고 말았다.


일회용품들의 특징은 한번 쓰고 버려져 적응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사라진다. 그래서 일회용은 시간이 갈 수록 싫어졌다. 


어쩌면 인생이 한번 살다 지나가는 일회용 같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두고 두고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에 애착이 가고 집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손에 익고, 눈에 익고, 귀에 익고, 입에 익은 것들, 아니면 단순히 낮선것이 싫고 새로운 것을 익히는 불편함이 싫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두고 두고 다시 사용하는 뿌듯한 느낌은 뭔가 절약했다는 느낌과 뭔가 이루었다는 묘한 느낌으로 마음을 풍성하고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몇 년 전 만년필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을 때, 저렴한, 이, 삼천원짜리 만년필을 한참 쓴 적이 있었다. 이, 삼천원짜리 만년필이라고 무시했다간 크지도 않은 코를 다칠 수 있으니 그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를 추천한다.


좋다.

상당히 좋다.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펜촉이 종이를 가르는 느낌도,

잉크가 종이에 번지는 느낌도... 


그렇게 몇 주, 그 만년필과 사랑에 빠져 글자 한자 두자를 써 내려가다 보면 그 만년필이 손에 익는다. 한 번 손에 익다 보면 만년필이 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루게 된다. 몇 주가 지나면 언제 고장나도 이상하지 않은 만년필이기에 더욱 더 조심한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조심스럽게 사용해도 한 달, 두 달이 지나면 플라스틱 껍데기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가슴이 철렁한다. '올 때가 왔구나!’ 몸통에 균열이 생기고 카트리지를 끼우는 부분이 느슨해져 잉크가 배어 나오고, 만년필촉 밑에 있는 잉크를 머금고 있는 부분이 약해져 펜촉으로 잉크가 울컥 쏟아지곤 했다.  


두 달을 넘어 벌써 세 달째 쓰고 있는 삼천원짜리 만년필이라 그냥 버려도 아쉬울 것 없지만, 문제는 이미 그 만년필이 내 손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만년필을 고치려 몇번을 시도했는지 모른다. 잉크가 쏟아져 손이 새카맣게 되어도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이나 잉크도 옷도 버리고 난 후 난 그 만년필을 버렸다. 


두 서너달 익숙해진 느낌을 아쉬워하며 삼천원짜리 만년필을 쓰레기통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을 때 눈물이 찔끔 나와서 나는 살짝 놀랐다.


그래서 나는 싫다.

버려지는 일회용품도, 일회용품을 버리는 것도...

익숙해지면 버려지고, 버려야 한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고, 행동도 고치려 노력했다. 더 이상 일회용 카트리지를 사용하지 않고 리필 가능한 컨버터를 사용하기로 했다. 만년필을 쓰다 더 이상 글씨가 써지지 않으면 만번중 구천구백구십구는 잉크가 다 된 것이니 만년필 뒤쪽을 돌려 열어 컨버터를 돌려 압착부분을 끝까지 아래로 돌려 내린다. 남아 있던 잉크가 촉으로 흘러내린다. 그럼 만년필촉을 잉크병에 담그고 난 후 컨버터의 스크류를 돌려 펜촉으로 잉크를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컨버터에 잉크가 채워진다. 컨버터 스크류를 끝까지 돌리면 컨버터에 잉크가 찬다.


반 이상은 찬다. 


이게 아쉬워 잉크를 가득 채우려 몇 번을 더 시도했지만, 가득 채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60퍼센트정도가 나의 최선인 듯싶었다.


그게 내 최선인 듯 싶었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몇 가지나 될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반 이상 채워졌으면 그걸로 다행이었다. 그렇게 일년이상 같은 만년필을 쓰다 보면 좋던 싫던 만년필에 익숙해진다.


내 손도, 내 마음도, 내 눈도...


일년이 지나도 손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아주 고민스러운데 다행스럽게도 내 손은, 내 성격과는 달리, 그렇게까지 유별나지 않은 것 같다. 일년정도가 지나면 왠만한 만년필들과는 익숙해졌다.


그렇게 지금 내 손에 익숙해진 만년필이 두서너게 생겼다. 하지만 두서너해가 지나도 손에 익숙해지지 않는 만년필이 있다.


버릴까? 남에게 줄까? 고민도 해 보았지만...

아직은 내게 시간이 있으니, 뭐가 급할 게 있는가?

몇 년은 더 시도해 볼만은 하다.  


그 만년필을 잠시 이야기해 보자면, 글자를 쓰면 첫 글자를 쓸 때 한번에 써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두 세번 선을 그어야 잉크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잘 써지다가도 순간 순간 변덕을 부려 글자 한 귀퉁이가 없는 글자가 써지거나, 구멍난 동그라미가 생기기가 일쑤이다. 


그런데 쉽게 길들여지지 않은 이 만년필이 싫지가 않다.

만년필이 길들여지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만년필에 익숙해지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모나고 변덕스러운 이 만년필이 나 같아서 안쓰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다시 만년필 컨버터 스크류를 돌려 잉크를 채우고 글을 적기 시작한다. 글도, 만년필도, 너도 한결같이 쉬운 놈들은 아니다. 


반이라도 채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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