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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부 Feb 16. 2021

건강검진받은 날

누가 좋아할 것인가? 건강검진

작년에 받았어야 했던 건강검진을 미루고 또 미루다 해가 지나 오늘에야 받게 되었다. 물론 나의 의지는 아니다. 건강검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이 좋은 누군가는 통장에 잔고가 쌓여 가듯 건강도 날이 갈수록 좋아지는 사람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미루는 건강검진이지만 막상 시작해보면 금세 끝이 난다. 오전 9시 정도에 시작하면 점심시간 전에 끝이 난다. 건강검진이 싫은 이유는 후폭풍 때문인데 2년 전에 위궤양과 담낭용종이 발견되었었다. 다행히 친절한 동네 의사 선생님은 큰 문제는 아니니 지켜보면서 치료하자고 했다. 그리고 간수치도 높게 나왔는데 스트레스 때문이라며 한 달 정도 약을 먹자고 했고 시간이 지나며 잊고 살고 있었다.


2주 전 아내가 건강검진 예약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머리에 떠오른 세 단어는 위궤양, 담낭용종, 간수치였다. '괜찮아졌으려나? 더 심해졌으려나?'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한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 일단 검사를 받는 수밖에... 검진 날까지는 아직 2주가 남았으니 관리를 잘하면 괜찮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기대가 생겼지만, 2주는 생각보다 길었고 하루 이틀 까먹는 재미도 나름 있어 일주일은 금방 지나버렸다. 그래도 아직 일주일이 남았지만, 일주일 관리한다고 뭐라 달라질까 하기도 하고 진정한 건강검진은 늘상 하던 대로 하다가 받아야지 진정한 건강검진이지! 하는 생각에 평소 즐기던 야식과 맥주를 감사함으로 즐겼다. 속은 좀 쓰렸지만...


건강검진 하루 전날은 저녁 8시 이후엔 물도 먹지 말라고 했다고 아내가 말했다. 막상 밤에 아무것도 안 먹고 있으니 어색하기도 하고 맨 정신에 배고픔을 느끼는 왠지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어 위에 음식이 없는 상태가 그리 싫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잠도 잘 오는 듯했다.


아침이 되니 눈이 떠졌다. 배가 고프니 눈이 더 일찍 떠졌다. 씻고 아내와 함께 병원에 갔다. 기본검사와 피검사를 마치고 초음파 검사를 했다.

"간은 멀쩡하고... 췌장도 괜찮고... 음 신장도 괜찮고... 음 담낭은 어떤가 볼까요~"

선생님이 말했다.

"여기 보이시죠? 알갱이 같은 거 지난번이랑 비슷하네요. 이건 어쩔 수 없어요. 더 커지면 수술해야지만 아직 수술할 필요는 없고.."

선생님은 계속 말했다.

"동맥이랑 갑상선 볼 거예요.. 음 동맥은 깨끗하네요, 약간 실 같은 뭐가 있는데 그래도 상당해 깨끗해요. 그럼 갑상선을 볼까요? 이게 갑상선이에요. 왼쪽 갑상서~언.."

선생님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여기 뭐가 있네. 이거 보이시죠? 동그란 거 왼쪽 갑상선에 하나가 있네요. 음... 오른쪽에는 없어야 할 텐데.." 오른쪽 갑상선은 깨끗하면 좋겠다는 기대를 했다.

"음... 여기는 더 있네... 음... 0.6cm 정도... 스트레스 많이 받으면 이런 게 생겨요. 모양이 나쁘지는 않고... 지켜봐야겠네요. 일 년 안에 다시 검사를 하면서 봐야겠어요. 동맥은... 음... 깨끗하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것저것 묻고 싶었으나 겁이 나기도 하고 묻는다고 해서 바뀔 것도 없고 모양이나 사이즈로 봐도 아직 걱정할 단계가 아니라는 말을 위로 삼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전문가의 지시를 따르는 수밖에...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병원은 내가 사는 동네 '흥덕의 보물'이다. 나도 동의한다. 이런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초음파 검사를 마치고 나오니 아내가 벤치에 앉아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만들며 괜찮나며 입술을 오므린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일단 자리에 앉아 아내에게 말했다.

"담낭에 용종은 그대로 있고 갑상선에도 뭐가 있다네..."

아내의 얼굴에 걱정이 스쳐갔다.

"밤에 뭘 계속 먹어서 그런 거 아냐?"

"그런 것도 있고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거래.."

웃으며 대답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나는 위내시경실로 아내는 초음파실로 갔다. 20년 전 처음 위내시경을 했던 때가 생각이 났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내시경의 직경이 어마어마해서 '살려주세요'를 수십 번은 외쳤다. 하지만 내시경은 이미 목을 넘어 식도로 향하고 있어 누구도 나의 절규를 듣지는 못했고 난 그저 눈물과 침을 흘릴 뿐이었다. 눈물 한 바가지, 침 두 바가지를 흘렸던 슬프고도 더러웠던 위내시경의 경험이 스쳐갔다.


그때의 내시경에 비하여 지금의 내시경은 그래도 참을만하다. 참을만하다고는 하나 내시경이 입으로 들어와 목구멍을 지나 식도로 그리고 위속을 휘졌는 느낌은 언제나 생소하고 어색하다. 그래도 눈물이나 침을 바가지 단위로 흘리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해서 절이라도 하고 싶다.


흥덕의 보물 선생님이 내시경실로 들어오셨다. 진료실에서 초음파실로, 초음파실에서 내시경실로, 작은 병원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혼자 애쓰는 모습이 미안하기도 감사하기도 하다.


"자 힘 빼시고~"

선생님은 말했고 간호사 분들은 내 양손을 붙들고 머리를 누르고 있었다. 아마 내가 갑자기 일어나는 돌발행동을 할 사람으로 보였던 것 같다. 내시경이 입으로 들어와 목 뒤로 넘어가고 있다. '정신을 탈출시키자! 유체이탈! 이건 내 몸이 아니다!' 주문을 외웠다.

"아, 잘하고 계세요... 식도는 깨끗하구요..." 선생님은 말했다.

'다행이네요, 선생님'하고 말하고 싶었으나 마음으로만 전했다.

"어이구.. 위궤양이 심하네요... 음..." 선생님은 계속 말했다.

"어이구야, 여기도 있네. 이거 심한데요, 궤양이 몇 개야... 갑상선이 왜 그런지 이해가 되네요"

이쯤 되면 걱정이 안 된다는 말은 거짓말일 것이다.

"괜찮아요. 치료하면 됩니다. 십이지장은 괜찮아요. 자 이제 다 끝났습니다"


내시경 파이프가 위에서 식도로, 식도에서 입으로 나왔다. 잘 참은 내가 대견스러웠다. 조용히 긴 트림을 하고 내시경실을 나왔다. 기다리고 있던 아내는 다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드며 괜찮냐고 물었다.

"위궤양이 너무 많다네... 갑상선이 왜 그런지 이해가 된다네.."

"진짜 밤에 뭐 먹는 거 그만해라 이제"

속 상한 아내가 말했다. 그런데 왠지 그 말이 스스로 하는 다짐처럼 들렸다.

"스트레스 많이 받으면 그렇데..."

웃으며 말했다.


그때 마침 아내의 이름이 불렸고 아내는 내시경실로 들어갔다. 10분이 지나지 않아 아내는 나왔고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괜찮다며 입을 오므렸다. 그렇게 우리는 진료실 앞에 앉아 선생님을 기다렸다.


이 의사 선생님은 사람을 참 기분 좋게 만든다. 친절하고 다정하다. 왠지 치료가 되는 듯하다.


아내의 내시경 사진을 먼저 보았다. 식도염 증상이 있지만 괜찮고 2년 전보다는 좋아졌다고 했다. 다행이다. 아내는 시간이 지날수록 건강해지는 그런 사람인가 보다. 아내는 특별한 문제없이 넘어갔다. 세금 환급은 아니더라도 덜 내는 느낌이랄까?


내 차례가 되었다. 미리 이야기한 대로 난 위궤양에 담낭용종에 이제는 갑상선까지 더해졌다.

 "약을 좀 오래 먹어 봅시다. 스트레스가 많으면 그러니까"

선생님이 미소를 지었다.

2주 뒤에 다시 만날 약속을 하고 병원을 나왔다.


밤에 먹는 것이 얼마나 맛있는데, 야식과 맥주를 끊어야 한다는 게 약간은 섭섭했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이지만, 사실 속이 좀 쓰리고 그랬다.


우리는 병원을 나와 우체국을 들린 뒤 브런치를 먹으러 갔다. 아내는 오징어 콩나물국밥을 주문했고 난 된장 시레기국을 시켰다. 속이 뜨끈해졌다. 벌써 위궤양이 나은 듯했다.


그럼 이제 나의 갑상선을 위해 뭘 먹어야 할까?


오늘 난 미루고 미루던 건강검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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