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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부 Jul 23. 2021

여행의 시작

딸과 떠난 일주일간의 제주 여행 01

언제부터 여행은 시작되는 것일까?

'여행의 시작은 준비부터'라는 말이 이제 상식처럼 여겨지지만,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왜 미처 그걸 생각하지 못했지? 왜 난 여행을 그렇게 준비하지 못했지?’하는 깨달음과 반성 사이에서 고뇌했다.


'준비부터 여행'이라는 단순한 생각의 전환.

소풍 가는 날 배낭에 과자와 사이다를 넣던 즐거움을 잊었단 말인가? 그건 아마도 준비의 수고를 알아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이 때는 가방에 먹을 것을 넣고 가면 그만이지만, 아이의 김밥을 만들기 위해 소풍 전 날 단무지, 당근, 어묵, 소시지, 시금치 등 장을 보고 김밥 재료를 손질하고 당근, 시금치, 소시지, 어묵을 볶고 계란 지단을 만들어 아침 일찍부터 김밥을 말던 어머니는 즐거웠을까? 아님 귀찮아 짜증이 났을까?


난 김밥에 든 시금치가 싫었다. 질겨서 씹기 힘들었고 이에 끼기도 했으며 간은 언제나 들쭉 날쭉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소리 질렀던 이승복 어린이처럼 ‘나는 시금치가 싫어요!’를 외치며 제발 시금치 넣지 말라고 그렇게 이야기해도 어머니는 꾸준히 한결같이 한 번도 빠짐없이 김밥에 시금치를 넣으셨다. 그것도 길고 질긴 놈으로… 김밥을 말며 얼마나 즐거웠을까? 어머니는…


‘김밥집에서 사서 가지고 가지 그랬냐?’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김밥은 사 먹는 게 아니라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이었다. 친구 엄마의 김밥을 먹고 ‘집에서 만든 김밥이 이렇게 맛있을 수도 있군…’하고 흠짓 놀랐던 기억이 떠 올랐다.


대학 2학년이 된 딸은 제주도에 가고 싶어 했다.
집도 집, 학교도 집이 된 지금 어디라도 가고 싶을 것이다.
집에서 가장 먼 곳은... 제주도

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섬은 섬이요 바다는 바다로다’이다. 도를 깨우친 성철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처럼 득도에 이른 해탈의 표현이 아니라. 디폴트, 그러니까 태어나 보니 섬과 바다는 내 삶의 기본 설정값이라 그 어떤 감동도 전해주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성철스님도 ‘맨날 산과 물을 보니 지겨워 죽겠다! 너~무 지겹다’라고 말한 것인데 눈치 없는 중생들이 뭐 깊은 뜻이 있는 것인 양 해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산과 바다는 김치와 밥처럼 특별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그런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 제주도에 갔을 때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 ‘뭐야? 좀 큰 섬이잖아!’ 나에게 제주도는 그냥 좀 큰 섬이다.


하지만 딸은 내가 아니다.

딸에게 제주도는 새롭고 흥미로운 곳일 것이다. 바다를 따라 펼쳐져 있는 해안도로, 기이한 현무암 해변, 해녀들이 물질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푸른 바다, 콤콤하고 시원한 바닷바람, 한라산에 걸려있는 구름과 바다까지 펼쳐져 있는 산능선을 보며 탄성이 나오는 곳, 도회지와는 너무나도 달라 마치 이국 땅에 있는 듯한 느낌이 살짝 들 수도 있는 그런 곳일 것이다.


처음엔  식구가 여행을 가기로 했으나 작년에 식구가  고양이 2마리 때문에 아내는 집에 남기로 했다.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다른 딸에게는 묻지 않았다. ‘학교가 중요하냐? 체험학습도 있다! 나도 데려가라!’ 생떼를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 중학교 방학은 여행 뒤의 일이라 미안해할 것까지는 없었다. 언니처럼 아빠랑 단둘이 여행  날이 오겠지?


그렇게 딸과 아빠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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