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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부 Jul 24. 2021

서귀포, 벌써 친근해진다.

 딸과 떠난 일주일간의 제주 여행 02

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1. 목적지

2. 목적지까지 가기 위한 교통수단

3. 지낼 숙소

4. 돌아다닐 곳과 하고 싶은 일 (흔히 일정이라고 함)

5. 돌아다니기 위한 교통편

6. 돈


대략 계산해보니 여행은 가능했다. 그리고 목적지는 이미 딸이 정했다. 그럼 다음 단계인 목적지까지 가기 위한 교통수단 다시 말해 '제주도까지 무얼타고 갈 것인가' 고민했다. 배편도 있다고 살짝 말했지만 딸은 단호하게 "비행기!"라고 말했다. 설득해서 가능한 것이 아님을 충분히 알 수 있는 목소리였다. '배 타고 여행하는 낭만도 있기는 한데... 아빠 대학 졸업여행 제주도로 배 타고 갔는데...'를 말할까 하다 그만두었다. 꼰대라느니 하는 이야기나 들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좀 더 생각해 보니 그때의 기억이 그다지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바로 접었다.


수많은 비행기들이 김포에서 제주로 그리고 제주에서 김포를 오간다. 김포에서 출발 요일과 시간을 정해야 하고 제주에서 출발 요일과 시간을 정해야 한다. 월요일에 출발해서 금요일에 돌아오기로 했다. 산책을 나온 온 가족이 설빙에 앉아 팥빙수를 시켜 놓고 눈이 빠져라 여행 웹사이트를 넘나들고 가격을 실시간으로 비교해서 정한 요일이다. 팥빙수가 나왔다. 빙수를 먹다 말고 숟가락을 입에 물고 검색을 했다. 출발 비행기 시간과 가격, 도착 비행기 시간과 가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일정을 잡았다.


스트레스가 스멀스멀 밀려오기 시작했다. '준비도 여행!' '여행의 출발은 준비부터'를 되뇌며 즐겁자고 다짐했다. 빙수 한입, 입에 넣고 검색을 계속했다. 풍문과는 다르게 비행기 가격은 그렇게 싸지 않았다. '왕복 3만 원대는 누가 한 거짓말인지? 그래 비행기를 3만 원에 탔을 리가 없어' 혼자 중얼거렸다. 빙수가 우윳빛 바다가 되었을 즈음에 월요일 오후 2시 출발, 금요일 밤 10시 도착으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비행기 편이 정해졌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다음은 어쩌면 비행기 편 보다 머리가 더 아픈 숙소 선정이다. 먼저 위치이다. 숙소의 위치는 아무래도 딸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 딸은 서귀포가 좋겠다고 했다. 서귀포가 어떤지 나는 모른다. 사실 딸도 모른다. 우리는 아무 생각이 없다.


일반적으로 단어는 그 단어와 함께 어떤 이미지, 풍경, 감정, 느낌과 같은 것들을 연상시킨다. 정지된 이미지라기보다는 짧은 영상에 가까운 장면이 떠오른다. 예를 들어 '라면'이라는 단어는 라면의 포장이나 사각형 면발 혹은 면발과 같이 있는 분말스프, 건더기스프를 연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냄비에서 빨간 국물이 보글보글 끓으며 면발이 보일락 말락 모락모락 김이 나는 그래서 그 비주얼 만으로 입안에 침을 고이게 만드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에 더하여 인공 조미료의 달큼한 냄새까지 나게 한다. 그리고 잠시 뒤 '한입만!'이라는 환청까지 들려 정신적 충격을 더해준다. '먹고 싶으면 끓여 먹어!' 나도 모르게 소리치게 만드는...


'서귀포'라는 단어는 힘이 없다. 나에게 아무것도 연상시키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나면 '서귀포'라는 단어는 나에게 딸과 함께 만들었던 작은 에피소드들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서귀포'가 벌써 친근해진다. 이름은, 단어는 우리에게 추억이라는 소중한 기억을 붙들어 준다.


일주일 뒤의 '서귀포'는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지만 지금의 '서귀포'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 골치 덩어리다.


숙소는 왜 이렇게 많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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