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곡을 아시나요?
저작권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 담긴 창작물에 대해 그것을 만든 창작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음악을 창작한 사람에게 그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음악 저작권일 것이다. 저작권은 당연히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지만 저작권법은 이와 동시에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하여 그러니까 합법적으로 많이 사용하게 하여 문화를 융성하게 하려는 목적이 있다.
저작권법 = 저작물의 보호 + 공정한 이용
너무 보호에 치중하면 이용하기에 불편하고 이용을 너무 쉽게 하면 보호하기가 어렵다. 저작권법은 보호와 공정한 이용의 균형을 잡기 위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아니 갈등한다고 해야 하나?
법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법은 빠르게 변하는 현실보다 항상 늦게 바뀐다. 그렇게 되는 것이 안전하다. 그리고 이론상 법은 현실보다 빨리 바뀔수가 없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법이 항상 늦게 현실에 반영되기 때문에 현실과 법 사이에서는 항상 괴리가 존재한다.
저작권법에도 괴리는 있다.
음악이 저작권은 보호를 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굳이 저작권법의 역사를 연구하지 않아도 우리나라에서 불법음반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강남대로나 레코드가게에서 사던 때가 있었던 사실을 기억해 보면 될 것이다. 이런 사실을 상기시키는 이유는 편곡이라는 행위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저작권법이 성립되던 당시 음악은 클래식음악이었다.
클래식에서 음악을 창작하는 방법을 상상해 보자. 작곡가가 고뇌에 찬 얼굴로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 피아노 보면대에서 빈 오선지가 놓여 있다. 영감이 오기를 기다리는 할멈같이 초초하고 괴팍하다. 이때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다. 드디어 기다리는 영감이 왔다. 펜을 들어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기 시작한다. 작곡가가 음악을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음악은 완성된 음악일 확률이 상당히 높다. 클래식에서 음악을 창작하는 방법은 여전히 이렇게 만들어진다. 콜라보 형식으로 여러 창작자가 같이 음악을 만들기도 하지만 창작자가 완성된 음악을 만든다.
클래식에서 편곡은 완성된 음악 즉 창작자가 만든 음악을 변경하는 행위이다. 악보에 기록된 음을 하나만 바꾸어도 화성이 망가질 수도 있다. 그래서 클래식에서 편곡은 아주 위험한 행위이고 이 행위는 창작자가 만든 음악의 완성도 혹은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저작권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격권 중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창작자가 만든 음악을 변경한 경우 즉 편곡을 하기 위해서는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만약 편곡의 행위가 창작자가 만든 음악을 변경하지 않는 경우라면 어떨까?
편곡을 하는데 창작자의 음악을 변경하지 않을 수도 있나?
앞서 설명하였지만 클래식에서 창작자는 완성된 음악을 만든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대중음악 그러니까 가요의 경우를 보면 이와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흥얼거리며 멜로디를 불렀고 여기에 가사를 붙여 스마트폰에 녹음을 했다고 하자. 아무리 들어도 명곡이다. 음악을 공부하지 않은 이 사람은 음악을 공부한 친구에게 녹음된 것을 들려 주었다. 녹음된 것을 들은 친구는 아주 온화한 성격을 가져서 녹음한 친구를 때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멜로디와 가사에 코드를 입혀 주었고 노래의 구조도 만들어 주었다.
이 마음씨 좋은 친구가 한 행위는 무엇인가?
편곡은 본래의 음악을 변경하는 행위를 동반하지만 이 마음씨 좋은 친구가 한 행위는 본래의 음악을 변경한 행위가 아니다. 약간의 비약이 있기는 하지만 멜로디와 가사에 코드를 입혀 주었고 노래의 구조를 만드는 행위는 무엇인가? 음악에서는 이 역시 편곡이라 부른다. 물론 편곡은 이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예술적이다. 당연히 작곡도 그럴 것이다.
같은 멜로디라 할 지라도 편곡자에 따라 혹은 편곡자의 음악적 능력에 따라 원래의 멜로디가 말도 안되게 멋진 음악으로 탄생하는 것을 아주 자주 목격하게 된다. 원래의 음악이 바뀌었나? 다른 말로 원래의 멜로디와 가사가 바뀌었나?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럼 편곡자가 한 행위는 무엇인가?
저작권법에서 편곡의 행위는 새로운 저작물을 만드는 행위로 새로운 저작물의 저작자는 편곡자가 된다. 저작권법에서 쓰는 몹쓸 용어로 말하자면 편곡은 2차적저작물을 만드는 행위이고 이로 인해 만들어진 저작물은 저작자는 편곡자가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편곡자는 2차적저작물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내 새끼를 내 새끼라 부르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이랄까?
이에 대해 멜로디와 가사를 만드는 창작자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멜로디와 가사가 없으면 편곡도 없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편곡이 없으면 음악은 상품이 되지 못한다. 아니 음악도 예술이니 말을 좀 고쳐써 보자. 편곡이 없으면 멜로디와 가사는 공중이 향유할 수 있는 음악이 되지 못한다.
네가 만든 것이 중요하네, 내가 만든 것이 중요하네 경중을 가리자는 것이 아니다. 네가 만든 것이 중요한 만큼 내가 만든 것도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한국 음악 저작권에서 창작자의 지분은 해당 음악 매출의 10%이다. 작곡자와 작사가에게 이 10%를 준다. 편곡자가 있다면 (언제나 있지만) 이 10% 12개로 나누어서 자비롭고 넉넉한 마음으로 12의 2를 편곡자에게 준다. '뭐 없냐고? 있지! 저작자로 인정은 해 줄께' 하는 친절한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