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에 대한 극도의 경멸에는 내가 있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던 것 같습니다.
'관용의 미덕은 인류에 대한 극도의 경멸에서 생긴것이다.'
이 글을 처음 읽었던 순간의 느낌을 기억합니다.
진실, 해탈, 카타르시스
진리를 대면한 것 같이 너무 시원했습니다.
사이다였습니다.
푹푹찌는 여름날, 냉장고에서 막 꺼내 얼음가득한 잔에 부어 마시는 시원한 사이다.
'극도의 경멸'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을 잘 알고 있나?
1788년에 태어나 1860년에 생을 마감한 한 쇼펜하우어, 감히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살다보니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돈과 소유에 대한 억지스러운 행동들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경박한 행동들
화가 날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고개가 절래절래 흔들어집니다.
참 무례합니다.
'이성 없는 동물에게 크게 화를 내지 않는것'이라는 쇼펜하우어의 말로 스스로를 달래보지만 화와 짜증은 어쩔수 없습니다.
당신 때문에 내가 손해 보고 있는것 알고 있나요?
당신 때문에 내가 힘든거 보이지 않나요?
그래서 다르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피해를 주지 않을려고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적어도 난, 그렇게 행동하지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가끔은, '스스로 대견하다'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다르다 생각했습니다.
날선 식도로 무를 자르다 손가락이 절단된 것처럼 등에서 식은땀이 나고 무서워 죽겠습니다.
어떻게든 이 현실을 부정하려해도 잘린 손가락들은 싱크대에 뒹굴고 심장이 뛸 때마다 피는 솟구쳐 도마는 이미 피바다가 되었습니다.
너무나 서툴고, 역시 어립니다.
자기가 사람인냥 착각하고 행동하는 개들이 있습니다.
내가 딱 그 모양입니다.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고개들기도 힘이 듭니다.
간신히 입술만 움직여 말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너나 잘하세요'
이 말을 착각했습니다.
'너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라'
'너 자신을 알면 그것을 발견하리라'
아무리 착각은 자유라지만 이건 뭐...
잘못짚어도 한참 잘못짚었습니다.
소크라테스도, 쇼펜하우어도, 금자씨도 알고 있었습니다.
'뷩신, 너나 잘하세요'
극과 극은 이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런것 같습니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던 '인류에 대한 극도의 경멸'에 내가 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꽁꽁 숨겨 놓았습니다.
그 경멸의 끝에서 자기 자신을 만나 혼자 깨닫고 혼자 잘 살아버렸습니다.
못된 영감입니다.
'관용의 미덕은 '나'에 대한 극도의 경멸에서 생긴것이다'
억지스럽고 비굴하고 천박한 나...
이 인간을 어쩌면 좋습니까?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누가 들을까 무섭게, 가슴을 치며 입을 닫고 말합니다.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