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에 힘주어 쓴 글들이 대체로 길었다. 공백 제외하고 2,500자 내외. 그정도면 엄청난 필력으로 커버하지 않고서는 끝까지 독자를 붙들어두기 힘들 거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작정하고 칼을 빼들었다.
아이사진으로 가득한 폴더를 열었다가 엇비슷한 연속 컷 하나 삭제하지 못하고 망설일 때와 같았다.
다시 조용히 칼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다른 방도를 고안해냈다. 긴 글을 두 개로 쪼개는 것! 다행히 글 어느 지점엔가 편집점이 있었다. 버리기 위한 칼부림이 아닌 나누기 위한 칼부림은 다행히 잘 해냈다. 2,500자를 둘로 쪼갰으니, 적당한 분량(1,500~1,800자 정도)으로 맞추기 위해서는 좀 더 보태서 써야했다. '그정도야 뭐!' 빼기보다는 단연 쉬울 것 같았다.
하하. 지금 생각해보면, '미덕'이라고까지 칭송할 일이었나 싶다. 앞으로는 와다다다 써놓고, 클릭! 클릭! 클릭! 세 번 정도로 끄알끔하게 쳐내리라. 더하는 게 이렇게 고된 일이 될줄 몰랐다. 길이를 나누면서 목차 제목도 다시 수정해야 했고, 당연하게도 장의 구성도, 제목도 다 수정이 필요해졌다. 어떤 글은 보태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다시 쓰는 격이었다. 예정에도 없던 '중간 퇴고'의 늪에 빠져 허우적댄 시간은 '고행'이라는 단어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
총 세 장에 걸쳐 나의 전UP주부 이야기는 일단락됐다. 이제부터는 다른 전UP주부의 이야기를 위해 달린다. 없는 글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비해, 있는 글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어떨까.
겨우겨우 큰 산을 하나 넘어온 기분으로 새로운 글쓰기를 시작하기 위해 판을 깔았다. '전UP주부이거나 전UP주부였던' 지인들에게 설문지를 부탁해서 차곡차곡 받아둔 회신을 꺼냈다. 열 명의 지인이 열 개의 질문에 답해준 글을 각각 한 장으로 편집해 총 열 장의 새 글이 탄생했다. '감탄과 혼란이뒤섞인달콤쌉쌀'했던작업을 통해 진하게 배운 바를, <글의 주인공과 글의 주인>이라는 글에 담았다.
글쓰기 여정의 절반 지점에서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걸까? 아님 반대로 어떤 회의가 든 걸까? 조금씩 자문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글을 왜 쓰는지, 과연 독자가 읽고싶어할 글인지, 사서 고생 중인 이 시간이 어떤 '의미'를 남길 수 있을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