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대신 잡초를 얹고 작동시킨 이앙기 같았다. 커서가 이동하는 길마다 자동으로 잡초가 착착 심겼다.
일명 잡초 뽑기. 틀린 표현과 쓸데없는 표현을 버리고 간결한 문장을 쓰도록 하는 구호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잡초 없이 깔끔한 문장을 쓰는 건 쉽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수동태 표현을 쓰고 불필요하게 '~것, ~의, ~적'을남발하며 중의적 표현을 포함해 중언부언하는 사족이 많았다.
간결하게 쓰기 위해 복문 대신 단문을 쓰려고 노력했지만, 내 문장이 아닌듯 자주 어색했다. 의식하며 쓰다보니 새롭게 발견한 사실. 나는 '~지만, ~하다'라는 문장을 너무너무너무 좋아한다는 거다. '~하다' 만 쓰면 되게 허전하다. '~지만'으로 단서를 붙여야 안심이 되는 건 왜일까.
잡초만 뽑다가는 새 글을 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자꾸 잡초밭으로 갔다. 어수선한 식탁, 어질러진 집안, 복잡미묘한 머리를 이고서는 앞으로 선뜻 나아갈 수 없는 성격 탓이었다. 결국 써놓은 다섯 꼭지로 돌아가 뱅뱅 돌아야 했다. 이때만 해도 몰랐다. 잡초밭 다음에 더 징한 것이 펼쳐질 거란 걸.
원고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었고, 쓰고 싶은 주제가 확실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전체 목차를 구체화할 수 있었다. 마구잡이 글감을 갈래에 따라 나누어 각 장에 배치하고, 장 제목을 고민하면서 그 밑에 일렬종대로 선 목차 제목을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내용이 훤히 드러나는 '직관적인 목차'보다 내용이 궁금해지는 '매력적인 목차'로 만들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지만단순히 '매력'을 추가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어떤 글은 제목에 따라 전체적인 분위기가 뒤바뀌어 써지기도 하고, 어떤 글의 마무리는 제목을 좇아가기도 하는 걸 경험하다 보니. 글의 방향키 역할을 하는 제목을 개선하는 일은 더없이 중요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글 쓸 시간도 부족한데 계속 시간을 쓴다. 고민할수록 나아지니 안 할 수가 없다. 욕심인지 희망 고문인지 모르겠다.
목차밭에 쭈그려있는 시간이 길어지니조급해지기 시작했다. 한페이지로 정리해둔 전체 목차를 볼 때마다 근자감 대신 부담감이 차올랐다. 써야 할 글은 줄줄이 대기 중인데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정신없는 연말이었고, 곧 방학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초조해졌다.
나를 짓누르고 있는 불편함의 출처를 따라가보니, '잘' 쓰고 싶은 마음이었다. 곧바로 원고쓰기 생초보답게 목표를 수정했다. 처음의 목표를 상기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