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띄엄띄엄 쓴 글을 다 모아도 70페이지가 안 되는데, 12주 후, 잘~하면 그만큼의 글이 쌓인다는 말에 혹했다.2월에 있을 제작 지원 사업에 응모할 수 있는 분량이라 하니, 매력적인 목표에 귀가 팔랑거려 '도전!'을 외쳤다. 낚싯밥을 덥썩 문 순간 하늘로 붕~날아올라 어느새 양동이에 철푸덕 안착한 물고기처럼, 내 신변은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브런치 퇴출 예정자 0순위'에서 '원고쓰기 생초보'로 돌변해버린 것.
잊으면 안되는 일정이나 배송받을 물건정도를 메모하던 카톡(나와의 채팅창)에 앞으로 쓸 원고의 '주제' 비슷한 것을 처음 끄적였다.
내가 쓸 수 있는 말 '전업주부'
내가 하고 싶은 말 '자존감'
두 단어로 책 한권 분량의 글을 써보겠다고 당찬 결심을 한건데, 그러고보면 물고기보다 신데렐라에 비유하는 게 나을 것도 같다. 요정의 마술봉이 날 한번 휘감아준 것처럼, 마음먹자마자 글감들이 팡팡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습관적으로 빠져들던 상념이 마치 불꽃축제 현장처럼 한순간에 수십 개의 글감으로 터졌다.
괜찮은 아이디어든 아니든, 일단 떠오르는 것들을 다 받아적었다. 구체적인 내용이 그려지지 않아도 작은 단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빠짐없이 메모했다. 2년여 동안 글다운 글을 쓰지 않았는데 그런건 상관없는 듯했다. 티끌 하나로도 글 한편이 뚝딱 써질 것만 같았다.
마구잡이로 떠올린 글감을 갈래에 따라 구분하고 각 장의 제목을 떠올려봤다. 탈고를 향한 도전을 <전업주부 자존감UP 프로젝트>라 명명하고 한 천번쯤 되뇌었을까. 슬슬 머리에 쥐가 날 즈음.
자존감 UP 전업
전UP? 전UP!
전 U P 주 부
제목 짓기에 빠져 걸음걸음 골몰하던 어느 밤 산책길에서 그렇게 '전UP주부'가 탄생했다. 레벨UP, 빌드UP, 스킬UP, 스타트UP, 클로즈UP 등등 온갖 UP을 끌어다가 전UP주부와 조합하면서 제목 짓기가 새 리듬을 탔다. 원고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주춧돌 삼으니 든든해졌다. 아직 모호한 것 투성이지만 차근차근 튼튼하게 골조를 잘 세워가면 될 것 같았다.긍정이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