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아이가 등교 준비하는 동안
입으로는 적당히 채근하면서
손으로는 가습기를 해체했다.
미리부터 계획하고 작정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따라 그곳으로 손이 뻗어서
시작된 일이다.
겨우내 잘 사용하다가
어느 날부터 그대로 방치된 채
먼지를 뒤집어쓰는 중이었다.
청소기로 주변을 밀고 지나갈 때마다
'저것을 정리해야 하는데..
영 하기가 싫으네..'
하면서 그냥 눈감아버리곤 했었다.
외부에 쌓인 먼지를 말끔히 닦아내고
물탱크만 적당히 씻어내면
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제대로 '정리'하려면
내부의 수십 개 증발판을 일일이 분리해서
물때를 박박 닦고 잘 말려야 한다.
생각만 해도 귀찮고 번거로워서
세월아 네월아 미루고 있었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다.
필이 딱, 꽂힌 날.
계획에도 없었는데 부담없이 손이 갔고
하다보니 힘이 나서 마음 먹고 끝을 본.
짜잔!!!
지켜야 한다는 부담을 자초하는 게 싫어서
계획하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고,
필요해서 계획을 세우더라도
언제든 변형/삭제/대체할 가능성을
활짝 열어두는 편이다.
신나고 설레는 여행도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진행하려면 스트레스가 동반되는데,
신나거나 설레지 않는 집안일은, 말해뭐할까.
해서, 할때마다 불평불만을 늘어놓지 않기 위해
내가 나에게 허용한 사치는
'하고 싶을 때 하기'다.
'하기 싫으면 안 하기'는 1+1
'이것 해야해, 저것 꼭 해야해' 하는 틀을 벗고
다음에 하면 되지~ 싫으면 안 하면 되지~
마음이 동하는대로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게
정신건강과 가정화목에 훨씬 도움되더라.
나원참. 집안일을 하기 싫다고 어떻게 안 해??
맞다.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있으면 일이 아니지.
'하기 싫으면 안 하기'는 '일단'의 의미다.
하기 싫으면 일단 안 하고, 하고 싶을 때 하기..ㅎㅎㅎ
슬슬 패딩점퍼를 하나 둘 빨고 있다. 하고 싶어서...
서랍장엔 겨울 니트가 그대로 쌓여있다. 하기 싫어서...
여기저기 흩어진 일감들이
어느 완벽한, 필 꽂힐 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