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동료
그는 나를 ‘허작’이라고 불렀다. 친한 친구들에게 ‘허맹’이라 불리던 시절이라 비슷한 맥락에서 듣기에 친근했다. 애정이 담긴 호칭은 아니었다. 그는 그저 그가 부르기 쉬운 호칭을 사용한 것일 뿐이다.
그에 대해 쓰자니 크게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없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굳이 떠올릴 계기도,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 잊혔다. 단순히 기억력 탓을 하는 건 변명 같기도 하다. 20대 초중반의 나는 직장에서의 인간관계에 비중을 두지 않았다는 각성이 따라온다. 일터에서는 일에만 집중했고, 남는 시간은 혼자의 여유로 채웠다. 일터를 나서는 순간 그 어떤 개인적인 연락도 주고받지 않았다.
((( 로멘스로 흘러가기 글렀군. )))
그렇다. 이 글은 ‘그와의 로멘스’로 이어질 수가 없다. 나보다 두 살 정도, 한 살이었나? 아무튼 그 정도 위인 그 ‘언니사람’은 조연출의 업무를, 나는 막내작가의 업무를 맡고 있었다. 괴팍한 차장님을 사수로 모셔야 하는 그녀가 자주 안쓰러웠다. 나름대로 꼼꼼한 성격이었지만 인간적인 구멍도 있었던 터라, 빈틈을 거칠게 지적하는 차장님 때문에 그녀의 실수는 같은 층 직원들에게 가감 없이 드러나곤 했다.
안쓰러웠지만 불쌍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늘, 매우 씩씩했고 호탕했고 털털했기 때문이다. 감정을 질질 끄는 법이 없었다. 트집을 잡으며 자신을 혼낸 사수를 대하는 태도가 참으로 쏘쿨했다. 꼼꼼한 완벽주의 기질은 타고났으니, 그저 조금만 더 침착하면 혼날 일도 없었다. 내보기에 그녀는 맡겨진 일을 충분히 잘 해냈다.
기억 속 그녀는 톰보이였다. 보통날은 ‘그’처럼 보였지만 어느 날은 영락없이 ‘그녀’였다. 통 넓은 리바이스 청바지는 다려 입은 듯 반듯했고, 하얀색 나이키 운동화는 늘 하얀색이었다. 툭툭 털어 말린 단발머리가 보송해지면 한 톨의 흘러내림도 허용하지 않고 정갈하게 빗어 묶었다. 차장님한테 호되게 혼난 후에 잠시 사라졌다가 돌아온 그녀의 눈은 벌겋게 충혈돼 있었지만 목소리는 담백했다.
그녀의 모습을 상기하며 적어 내려가는 면면에서 ‘외적인 남성스러움과 내적인 여성스러움’을 가늠하고 있는 나를 보니, 가치관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다. 털털하고 쏘쿨하게 직장생활 하는 듬직한 톰보이를 떠올린 것도 모자라 깔끔하고 정갈한데 가녀린 내면을 품은 모습에서 톰보이의 여성스러움을 봤다고 적고 있다니. 얕은 지식은 깊은 편견을 깨지 못하고 있다.
그시절 그녀의 이미지를 ‘톰보이’라는 한마디로 퉁쳐왔다는 게 미안해진다. 그녀가 치마를 입은 날이면 “오~ 오늘 무슨 날이야?” 했던 기억이 난다. 놀리려는 마음이 아니라 또 다른 일면을 마주한 반가움이었지만, 그런 말 자체가 실례였다. 그녀의 면면들은 ‘무엇스러움’이 아닌 그저 ‘이O은 다움’이었을 뿐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