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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Sep 20. 2016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_웃기면 그냥 웃어요!

이 영화에 없는 것 세 가지

개봉된 웬만한 영화는 사전 정보 없이, 그러니까 어떤 선입견도 없이 보러 가는 편이다. 애니메이션과 액션이 아니라면.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는 포스터의 색감만으로 봤을 때는 애니메이션인 듯, 영화 이름의 의미로 따지면 액션인 듯 했다. 이 모임이 함께 보자 정한 영화가 아니었다면 안 봤을 가능성이 컸다. 보고 나온 뒤의 평가는 달랐다. ‘아, 오랜만에 생각 없이 웃었네.’ 따져보면 그 웃음은 다음의 ‘세 가지’가 없기 때문에 가능했다.  


① 귀신의 사연과 한(恨)이 없다


tvN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의 처녀 귀신은 참 구구절절한 사연을 갖고 있었다. 자신이 목격한 뺑소니를 신고하려다 그 뺑소니 범인에게 살해당한 것. 귀신은 자신이 구천을 떠도는 이유가 ‘억울함’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처녀 귀신 딱지를 떼 줄 양기남(陽氣男)만 찾아다닌다. 이렇듯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귀신은 사연과 한(恨) 없이는 설명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결말에서 그 사연과 한을 다 해결해 내야 비로소 보는 사람들도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서양 귀신 장르’로서 이 영화에는 사연도, 한도 없다. 적어도 귀신에게는 말이다. 대신 이 영화 속 귀신들은 다분히 외계적인 형상을 하거나 괴이한 물질을 공격 도구로 쓰는 등 시각적 차원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해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실감했다. 어차피 귀신이라는 존재는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콘텐츠가 만든 이미지로만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그 이미지마저도 얼마나 고정적이었는지를. 


② ‘남성’ 히어로가 없다


대체로 우스꽝스럽고 이따금 무서운 이 영화 속 귀신들을 물리치는 존재는, 슈퍼맨도 배트맨도 아니었다. 즉 남성 히어로가 아니었다. 영화 시작 때부터 의기투합한 세 친구는 물론 뒤늦게 합류한 지하철공사 직원까지 모두 여성이다. (사무 보조원쯤으로 등장하는 남성이 있지만 영화의 갈등 장치를 부각하는 역할일 뿐이다.) 귀신을 엎치락뒤치락 때려잡을 신체적 힘은 이들이 남성 히어로에 뒤질지 모르지만 그 한계를 뛰어넘을 ‘무기’들은 아주 영리하게 개발해냈다. 알아듣기도 어려운 핵물리학 개념에 재치와 순발력을 더하니 각자의 손과 등에 어느새 무기들이 생겨난 것이다. 여성 캐릭터가 남성 히어로의 화려한 액션의 한편에서 보조적 액션을 구사하거나 그마저도 없이 ‘민폐’로 전락해있던 기존의 액션 영화와는 분명 달랐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에는 어쭙잖은 멜로 감성도 없다. 


③ 안 웃을 이유가 없다


유쾌함. 이 영화가 지닌 단 하나의 가치는 유쾌함이다. 미국 출신의 히어로가 미국의 대도시나 미국 전체, 나아가 인류를 구해내는 기본적인 틀이 실은 구태의연할지도 모른다. 다만 이 영화는 적어도, 한국에서의 개봉 시점만 놓고 볼 때 다른 개봉작들에 비해 ‘생각 없이 웃기’에는 큰 도움을 준다. <부산행> 기차를 달리다 <터널>에 갇혀 아연실색한, <덕혜옹주>와 <인천상륙작전>, <밀정> 등에서 역사의 엄격함에 짓눌린 한국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유쾌한 반란’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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