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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Oct 06. 2016

[영화] 밀정_2016년으로 온 일제시대

<아가씨> <덕혜옹주> 그리고 <밀정>

2016년이 끝나기까지 3개월여 남은 시점이다. 연말이면 뉴스마다 반복적으로 읊어대는 '다사다난했던 한 해'는 올해 영화계를 설명하는 말로도 손색이 없다. 한 걸음 빠르게 올 한 해의 영화를 정리해보는 차원에서 준비한 영화평이다. 일제(日帝)를 배경으로 해 2016년 개봉한 영화 세 편의 공통점 그리고 아쉬웠던 점을 적어본다. <아가씨>(감독 박찬욱), <덕혜옹주>(감독 허진호), 그리고 <밀정>(감독 김지운)이다. (연초 개봉한 영화 '귀향'과 '동주'는 최신순이라는 선택 기준에 따라 배제한다.)



그들은 모두 정의를 구현했지만...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어둡고 어두웠던 시대에 접근할 방식이라는 것은 애초에 다양하기가 어려울지 모른다. 관객들이, 나아가 우리 사회가 일제 배경의 작품을 보며 기대하는 장면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바로 '나쁜 놈'은 벌 받고 '희생자'는 숭고하게 남는 것. 보편적 눈높이의 관객을, 최대한 많이 끌어모아야 하는 감독과 제작사 입장에서는 그 기대를 저버리기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박찬욱 허진호 김지운 세 사람 역시 '쉬운 결말'을 택했다. 우리는 이 같은 방식을 흔히 '정의 구현'이라 부른다. <아가씨>의 두 남성은 우스꽝스럽거나 처절하게 죽어갔고 <덕혜옹주>의 덕혜는 우여곡절 끝에 고국으로 돌아와 아련하게 옛 시절을 떠올렸다. 사실 <덕혜옹주>의 결말은 사실에 기반을 뒀기 때문에 감독이 의도적으로 쉬운 결말을 꾸려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실과는 달리 무기력하지 않은 덕혜의 모습도 영화 곳곳에 드러낸 것을 주목할 수 있다. <밀정>은 누가 밀정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든 인물이 일제에 저항하게 된다. '다양성' 차원에서 관객의 한 사람인 나는, 다른 방식의 결말도 확인해보고 싶다. 이를 테면 <밀정>에서 끝내 누가 '밀정'인지 알지 못한 채 끝나는 식이다. 관객들은 '내가 일제를 살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며 각자의 밀정을 한 명쯤 정해둘 수도 있고. <곡성>이 악인(惡人)을 명확히 알려주지 않았던 것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가 될 듯하다.


왼쪽의 흰 색과 오른쪽의 검은색, 마치 선악 구도를 보여주는 듯하다. 저 검은 무리 중 두 사람이나 결국 죽음에 이르기도 하고. <아가씨> 스틸컷.


<아가씨> 144분 <덕혜옹주> 127분 <밀정> 140분


세 영화의 상영 시간을 적어봤다. (물론 최근 개봉한 대부분의 영화들이 두 시간쯤은 거뜬히 채워내기는 했다.) 무척 긴 상영 시간 동안 인물들의 사연, 심리, 서사는 하나하나 풀어 설명이 됐다. 내 소회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아쉬움'이다. 들어가지 않았거나 압축적으로 표현됐다면 더 좋았을 장면들이 눈에 띄고는 했어서다. 특히 <밀정>이 그랬다. '하시모토'가 기차를 헤집으며 의열단원들을 찾는, 그러니까 하시모토 김우진 이정출 세 인물이 한 자리에 모이기 전까지의 장면은 할당된 시간을 줄이되 긴박하게 전달했다면 어땠을까. 세 사람의 총격신이 지금보다는 더 폭발적으로 느껴졌을 것 같다.


'그것이 알고 싶다?' '플래시백'이 알려줄게!


인물들은 관객이 예상치 못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의 배경을 '실은 이거야'라며 나중에 설명해주는 방식, 플래시백. <아가씨>는 이 방식 하나로 영화 전체를 끌고 갔다 해도 무리가 없고 <덕혜옹주> 또한 '김장한'의 예전 기억과 현실을 오간다. <밀정>은 앞서의 두 영화만큼 플래시백이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결말에서 이정출의 법정 증언을 뒤집는 짧은 플래시백이 등장한다. 이 기법 자체를 좋다 나쁘다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신선하지 않은 접근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 매거진의 지난 영화 '그을린 사랑'은 탄탄한 서사가 뒷받침됐기 때문에 플래시백이 오히려 관객의 이해를 돕는 장치로 충실히 역할을 했다.)


김지운 감독은 자신의 다음 영화도 송강호와 함께 할까? 그때의 송강호는 '이상한 놈'과 '이정출'을 뛰어넘는, 그런 인물일까? (백세주 광고 아닙니다.) <밀정> 스틸컷.

상업영화계가 늘 주목하는 세 감독이, 한국 정서에 부합하는 소재와 결말을 선택했으며, 친절한 기법을 썼다. 그럼에도 세 영화 모두 천만 관객을 넘지는 못했거나 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한다. (천만을 넘겨야만 기억될 가치가 있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이들의 차기작이 어떤 모습일지는 여전히 기대되지만 한 가지 전하고 싶은 바가 있다면 다음과 같다.


"'대중성을 노린 코드를 써도 천만을 달성하지 못할 바에는 하고 싶은 대로, '똘기'를 마구 펼쳐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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