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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Nov 01. 2016

[영화] 헤드윅_자유는 어디에

남자, 록스타, 그리고 '엄마'_헤드윅을 외롭게 하지 마세요.

음악, 사랑, 성 정체성 등 영화 <헤드윅>의 ‘연관 검색어’는 다양하지만 나에게 이 영화는 ‘자유를 갈망한 어느 인간의 성장기다. 자유에 대한 철학은 넘쳐나고 나는 그 깊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자유는 결국 내 안에 있다는 것. 주인공 ‘헤드윅’은 그 사실을 알기까지 긴 여정을 지나온 셈이다.


헤드윅은 왜 자유의 의미를 깨닫기까지 그 ‘고생’을 해야만 했을까. 자기 안에서 자유를 찾기에는 최소한의 환경조차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헤드윅의 자유를 앗아가는 외부 장치는 두 가지, 베를린 장벽과 엄마다. 베를린 장벽은 체제로서의 자유가 없음을 상징했고 엄마는 헤드윅이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실질적) 자유를 억압했다.


특히 엄마는 헤드윅이 스스로 어떤 선택을 할 물리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는 그 자체로 헤드윅 인생의 큰 변수가 됐다. 엄마가 싫어하는 미국 음악 방송을 듣다 오븐에 갇히는 학대를 겪으며 오히려 더 음악에 빠져든다. 젤리의 달콤함으로 형상화된 미군(미국)에 이끌려 결혼을 결심했을 때는 엄마의 ‘추천’으로 성 전환 수술대에 오르면서 인생의 대변혁을 맞는다.


베를린 장벽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졌지만 헤드윅이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영화 속 빠른 화면 전환만큼이나 성급히 결정된 수술은 ‘1인치의 성기’를 남겨버렸고, 이는 엄마에게 빼앗긴 자유의 대표적 상징물이었다. 어쩌면 그 그늘의 어둠을 덮기 위해 헤드윅은 더 화려한 가발과 화장에 매몰됐던 걸지도 모른다.


헤드윅과 토미, 음악이 없어도 두 사람은 함께일 수 있을까? <헤드윅> 스틸컷.

중반부를 지나며 헤드윅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상징적 장면이 등장한다. 바로 ‘토미’에게 성호를 그어주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헤드윅의 엄마는 신은 히틀러와 같다는 식으로 종교를 거부했기 때문에 성호를 긋는 행위만으로 헤드윅은 다른 사람인 듯 보였다. 마침내 헤드윅은 알게 된다. 자신에게도 스스로 어떤 결정을 내릴 자유가 있음을. 이후 자신에게 남겨진 성기를 토미에게 들키고서도 헤드윅은 현실에서 뒷걸음치기보다 이렇게 외친다.


“그럼 ‘그것’도 사랑해줘!”


안타깝게도 그 외침은 답을 듣지 못한다. 그때 등장하는 음악 ‘헤드윅의 한탄(Hedwig's lament)' 속 가사는 의미심장하다. ‘한 조각은 엄마에게 한 조각은 남자에게 한 조각은 록스타에게…. 내 몸의 상처는 콜라주, 난 꿰매졌어.’ 헤드윅은 그때서야 알게 됐을 것이다. 이곳만 벗어나면, 저 사람만 만나면 자유가 올 거라는 믿음은 그저 ‘허상’임을.  


'이 혼란에서 오는 왜곡된 진실로 남은 건 환상뿐.' <헤드윅> 스틸컷.


가발과 브래지어를 내던진 헤드윅은 영화의 마지막에서 어두운 골목길을 걷고, 카메라는 그 뒤를 가만히 비춘다. 암흑 속 나체, 언뜻 외롭고 처참한 모습으로 비칠지 몰라도 나에게 그 설정은 오히려 감독과 관객이 함께 헤드윅에게 전하는 ‘응원’ 이었다. 자유를 찾은 헤드윅이라면 앞으로 겪어 갈 인생도 그렇게 외롭지만은 않겠구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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