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 진실은 언제나 불편하다는 그 말. 알면 기쁜 진실은 대체로 금세 드러나거나 드러난 뒤에도 그 여운이 길지 않다. 상처가 됐거나 어떤 이유로든 숨기고 싶은 진실일수록 잘 알려지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알려진 뒤의 ‘후폭풍’은 거세기만 하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한 장면. 남편의 외도에 삶이 무너지다시피 한 엄마가, 어린 딸과 함께 죽기로 결심하고 농약을 나눠 들이켰다. 엄마에게는 자살이었을지 몰라도 딸에게는 살인이었다. 다행히 두 사람은 구조됐다. 마흔 살이 다 돼가는 딸은 자신에 대한 엄마의 간섭이 극에 이르렀다 싶은 어느 날, 더 이상 과거의 진실을 덮고 살 수 없음을 깨닫는다. “엄마 그때 왜 나 죽이려 했어.” 화제를 돌려보려던 엄마도 결국은 울며 뱉고 만다. “내가 널 두고 어떻게 먼저 죽어. 그래서 그랬어, 그래서.”
이 영화 <그을린 사랑> 속 진실도 드라마의 그것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잔인하다. 나(나왈 마르완)를 강간한 파렴치한이 알고 보니 내 아들이었다는 진실, 우리(쌍둥이 남매) 아버지가 알고 보니 우리 오빠‧형이었다는 진실…. 사람 사는 세상에 원래 별 일이 다 일어나기 마련이라지만, 이럴 수도 있나 싶었다. 엄마가 진실을 자신의 업보쯤으로 여기고 조용히 떠안고 가지 않았다는 설정은 더욱, 이럴 수도 있나 싶었다.
<디어 마이 프렌즈>의 딸은, <그을린 사랑>의 엄마는 왜 진실을 구태여 수면 위로 올려냈을까. 이제는 진부해진 듯하지만,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기 때문일 것이다. 억지로 덮어둬도 언젠가는 그 모습이 드러날 진실이라면 내 의지에 따라 드러내는 편이 낫기 때문일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드러날 때 그 상황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것보다야. 만약 <그을린 사랑>의 엄마가 편지(유서)를 남기지 않고 죽었다면, 그래서 어느 날 남매가 의도치 않게 진실과 마주해버렸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앞서의 그 진실들보다 더 끔찍한 어떤 것이 진실이 돼버렸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그 진실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 나누는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으면,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서로를 늘 오해만 하게 된다. 그들 사이에 크고 작은 다툼 등 문제가 생겨도 그 원인이 실은 아픈 진실에서 왔음을 알지 못하니까. <그을린 사랑>의 아들 ‘시몽’은 엄마를 원망해왔던 듯 보인다. 엄마는 남매를 볼 때마다 강간범의 얼굴이, 존재가 짓밟히던 그 순간이 떠올랐을 테고 그렇다면 남매에게 모진 말과 행동도 서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엄마가 그러고서 후회하고 다시 상처 주는 일을 반복했다면 아들이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하기는 힘들 뿐이다.
엄마의 지난 인생을 알게 된 뒤 남매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영화가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남매가 전보다는 엄마를 가여워할 것이고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불쌍하게만 기억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 시작은 위대한 사랑이었다.” 엄마가 이 말을 꼭꼭 눌러 쓴 덕분에 남매는 ‘후폭풍’을 감기처럼 겪고 넘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