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안 Nov 15. 2016

[영화] 라우더 댄 밤즈_가족은 서로를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조금씩 알아 가면 되니까.

엄마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영화 <라우더 댄 밤즈>에서 남편 ‘가브리엘’과 큰아들 ‘조나’, 막내아들 ‘콘래드’는 엄마가 죽고서야 알게 된다. 가족들이 서로를 얼마나 모르고 살았는지.  


따로 또 같이, 같이 또 따로
엄마의 죽음 그 후, 마음을 나누기 더 어려워진 그들 사이. <라우더 댄 밤즈> 공식 포스터


엄마가 죽고서 콘래드는 마음의 문을 꽉 닫았다. 귀를 막은 헤드폰과 다소 파괴적인 게임이 콘래드의 내면을 상징하는 듯하다. 가브리엘은 그런 콘래드를 걱정하지만 정작 콘래드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다. 엄마의 죽음이 아빠와 관련돼있다고 생각하는 콘래드 입장에서는 아빠에게 곁을 내어주기가 쉽지 않다.


콘래드가 대화를 거부하지 않는, 그래서 그의 이것저것을 더 많이 아는 쪽은 오히려 형 조나다. 콘래드는 자신이 쓴 글과 좋아하는 여학생을 조나에게는 자신 있게 보여준다. 심지어 아빠의 과거 영상을 찾았을 때도 당사자인 아빠 말고 조나를 불러 함께 웃는다.


조나와 가브리엘의 관계도 그렇게 친근하지만은 않다. 엄마의 사인을 콘래드에게 솔직하게 밝힐지를 두고 두 사람은 의견차를 보인다. 무엇보다 ‘누가 더 이자벨을 잘 아는지’를 두고도 두 사람은 다른 생각을 한다. “네가 타지 학교에 가면서 집을 비우는 동안 엄마 곁에 있던 것은 나다.”(가브리엘) “아빠는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와 매일 통화를 했고 엄마는 나에게 많은 것을 털어놨다.”(조나)


나이 차이 많이 나고 같이 살지도 않지만, 무슨 이야기든 편하게 나눌 수 있는 형제 사이. 스틸컷


한 집에 사는 콘래드와 가브리엘은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기만 한 반면, 한 집에 살지 않는 콘래드와 조나는 누구보다 서로가 편하다. 물리적 거리보다는 ‘마음의 거리’가 이토록 중요하다.


같이 있어 더 외로웠다


이자벨과 가브리엘, 두 사람 역시 물리적 거리가 별 것 아니게 될 정도로 마음의 거리를 촘촘히 좁혀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종군 사진기자인 이자벨은 오랫동안 집을 비울 때가 많았고 가브리엘은 이자벨을 늘 걱정했다. 아니, 걱정만 했다. 이자벨이 지닌 직업적 사명감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이자벨은 자신이 떠나 있는 동안 가족을 돌보느라 애쓰는 가브리엘에게 인간적 고마움은 느꼈겠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존재에 대한 갈망은 해소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 이자벨은 가족과 함께 있을 때 더 외로워진다. 가브리엘이 이자벨에게 “당신과 나는 떨어져 있지만 나는 늘 당신과 당신의 일을 존중한다”고, 아이들이 이자벨에게 “엄마가 없어도 우리는 잘 지내지만 그게 엄마를 잊고 지낸다는 뜻은 아니다”고 말했다면 이자벨은 외롭지 않았을 텐데.  


일을 하면서도, 집으로 돌아와서도 늘 외로웠던 엄마 이자벨. 스틸컷

가족은 서로를 모른다. 잘 알고 있다 믿지만 대부분의 경우 큰 착각이다. 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엄마의 죽음이라는, 극단적이며 비극적인 계기가 있고서야 서로를 알게 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계기가 없어도 좋다.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를 더 오해하고 있음을 인정하기만 해도 된다. 앞으로 서로를 얼마든지 알아가면 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걷기왕_스크린은 스포츠를 싣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