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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Nov 23. 2016

[영화] 걷기왕_스크린은 스포츠를 싣고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들

'일정한 거리를 규정에 따라 걸어 빠르기를 겨루는 경기. 한쪽 발이 땅에서 떨어지기 전에 다른 쪽 발이 땅에 닿게 하여 빨리 걷는다.' 영화 <걷기왕>은 바로 이 스포츠, '경보'를 소재로 삼았다. '조금 천천히 가자'라는 메시지에 이보다 더 잘 부합할 스포츠는 없었을 터. 이번에는 <걷기왕>을 보고 나오며 떠올린 또 다른 스포츠 영화를 다뤄본다. 


1. <반칙왕> (감독 김지운/2000년)


주인공은 평범한 은행원이다. 업무 성과는 늘 바닥, 밥 먹듯 지각, 그런 이유로 상사에게 늘 헤드록이나 당한다. 그가 낮의 일상에 찌든 채 달려가는 밤의 공간은 레슬링 체육관이다. 관장은 그를 반칙과 쇼맨십에 능한 '반칙왕'으로 키우려 하지만 관장의 딸은 그에게 적극적으로 레슬링 기술을 알려준다.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 출연자들처럼 그는 가면을 착용하고 마침내 경기에 나간다. 


반칙왕이라는 강요된 이미지에 맞추려 가면을 쓴 것뿐임을 보여주듯 그는 모두가 놀랄 만큼 열심히 상대와 싸운다. 그러다 상대의 손짓 한번에 가면이 부욱, 찢어지고 만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본 뒤 자신의 민낯을 세상에 당당히 내밀 때,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일단은 후련했을 테고 그 다음은, '이날의 경기처럼 일상을 살자'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그의 아우라가 영화 초반의 그것과는 달라보였으니 말이다. 


'힘으로 안 되면 깡으로 한다!' <반칙왕> 포스터


이 영화는 <걷기왕>과 이름이 비슷할 뿐 아니라, 스포츠라는 소재를 다루는 방식도 비슷하다. 둘 다 해당 스포츠의 속성을 리얼하게 살리는 쪽보다는 스포츠를 발판 삼아 감독의 메시지를 전하려 했기 때문이다. 


 2. <국가대표 1> (감독 김용화/2009) <국가대표 2> (감독 김종현/2016) 


<걷기왕>과는 다르게 특정 스포츠의 '다이나믹'한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영화도 있다. <국가대표> 시리즈다. 전작은 남자 스키점프를, 올 여름 개봉한 작품은 여자 아이스하키를 다룬다. 각 영화에서 인물들이 높은 곳에서 아찔하게 뛰어내리는 장면, 골문을 향해 가늠이 안되는 속도로 내달리는 장면 등은 스포츠 영화의 묘미를 잘 살린다. 비인기 종목과 그 선수들이 겪는 차별과 설움을, 투지와 승리 그리고 감동으로 전환해가는 과정이 다소 식상할 수 있지만 장면 하나하나가 전하는 짜릿함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래 두 사진은 모두 스틸컷.)



3. <머니볼> (감독 베넷 밀러/2011) 


이 영화는 실화와 동명의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꼴찌 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은 팀 성적을 올려보려 경제학자이자 전략가인 '피터'를 데려온다. 그가 말하는 승리의 핵심은 '저비용 고효율'이다. 홈런 수가 많거나 타율이 높은 타자(거포)보다 출루율이 높은 타자(발이 빠른 선수)가 승리에는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팀은 20연승을 기록하며 야구판에 큰 반향을 일으킨다.


보통의 스포츠 영화들이 취하는 문법은 이렇다. 스포츠 정신에 기반해 메시지를 전하거나 스포츠 그 자체의 역동성을 살리는 데 주목한다. (고루한 메시지, 어설픈 CG로 혹평을 듣는 영화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 <머니볼>의 접근법은 다르다. 스포츠를 과학, 정확히는 경제학과 맞붙였다. 영화 속 배경은 야구장인데, 보는 동안 관객들은 야구공보다 대사 한 줄을 더 눈여겨보게 된다.  


'야구와 영화를 좋아하는 상경계 전공자'인 나는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은 영화 목록 10위 안에는 꼭 올려둔다. <머니볼>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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