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안 Dec 21. 2016

[영화] 사울의 아들_무엇에 순종하시겠습니까

차분하게 돌아보는 올 한 해, 2016년.

크리스마스에 볼 만한 영화로 <사울의 아들>을 정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그럴 수 있겠다’와는 멀었다. 당황하거나 신기해하거나, (후하게 봐서) 약간의 기대를 전할 뿐이었다. 크리스마스의 연관 검색어쯤 되는 것들, 이를 테면 환희 축복 사랑과는 거리가 먼 영화로 보이니까.


어두운 색채와 닫힌 공간의 연속, 이 영화와 크리스마스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스틸컷)


무엇에 순종해야 하는가


진리에 순종하라, 내가 졸업한 학교의 정문 탑에는 이 글귀가 라틴어로 쓰여 있다. 그 바로 앞에는 매 연말,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는 구유가 설치된다. 구유에는 그 해의 기억할 만한 사건 이슈 또는 역사가 그려진다. 2014년의 세월호, 2015년의 난민이 그 예다. 올해는 세월호, 위안부 소녀상, 청년 실업 등이 함께 담겼다.


구유 앞에 서면 늘 그렇다. 또 한 해가 갔다며 씁쓸해하다가도, ‘지옥’ 같은 한 해를 보냈지만 더 지옥 같은 다음 해를 맞을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순종해야 할 진리라는 게 어렵고 거창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닿는다. 최소한의 공감과 연대, 바로 한 사회가 잊지 말아야 할 ‘생존의 진리’다.


당신의 2016년, 진리는 무엇이었나요. (구유 안을 직접 찍은 것)


순종하지 않는 자, 사울의 일생


성경에서 ‘사울’이라는 인물은 불순종의 대명사다. ‘다 쓸어버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좋은 짐승과 가축을 챙겨 하나님의 분노를 샀다. 이 배경지식을 알고 <사울의 아들>을 보면, 왜 제목이 그런지 이해하게 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원치않게 시체(토막)를 치우고 태우는 유대인 사울은, 독일군의 지시를 어기고 한 소년의 시체를 장례 치러주려 한다.


왕 되신 주여 찬송하나이다

땅에서 음식이 나게 하시며

죽음의 천사께서 랍비님 기도를 들으시네


시체를 땅에 묻을 때 기도를 해 줄 랍비를 찾아 수용소를 떠돌고,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수차례다. 죽은 사람 하나 때문에 산 사람들이 다 죽게 생겼다며 다른 유대인들이 자신의 행동을 비난해도 사울은 꿋꿋하며 떳떳하다. 그는 소년을 아들이라 칭하지만 영화 밖에서 일부 사람들은 소년이 아들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 같은 해석이 타당해 보이는 이유는, 소년이 아들인지 여부가 사울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절대적 역할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들이건 아니건 사울이 생명의 존엄, 생존의 욕망이라는 가치를 지키려던 것이 중요하다. 사울에게 순종할 유일한 대상은 그 가치였을 뿐이다.


사울, 그는 불순종이 아닌 순종의 대명사였다. (스틸컷)


차분하게 마무리해보는 올 한 해, 2016년


종교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탓인지, 나는 사실 크리스마스에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다. 일 년을 장식하는 수많은 휴일 중 하나라 하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 다만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다면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축제 분위기와는 한 뼘 떨어져, 이 영화를 돌려봐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거라 생각한다. 올 초 개봉한 ‘작품성 있는’ 영화지만 상영관이 많지 않아 바쁜 누군가는 놓치고 말았을 이 영화, 다가오는 새해에는 어떤 가치를 마음과 머리에 새기며 살아야 할지 알려줄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연애담_반찬이 궁금한 연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