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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Jan 17. 2017

[영화] 연애담_반찬이 궁금한 연애

‘그들’의 연애 말고 ‘우리’의 연애

“네가 무슨 반찬 먼저 먹는지 보려고.”


아, 세상에. 노트북 화면을 잠시 정지시키고 그 대사를 다시 돌려 들었다. 어찌 가슴이 떨리지 않을 수 있을까. 내 앞에 앉아 수저를 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유심히 들여다봐주는 순간. 


“너는 뭘 좋아해?” 누군가 나를 아껴준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스틸컷)


‘윤주’와 ‘지수’는 연애를 한다. 윤주가 고물상에서 지수를 우연히 본 뒤, 두 사람은 (우연을 가장한) 만남의 기회를 몇 차례 만든다. 윤주가 한 걸음, 다시 지수가 한 걸음 이렇게 서로에게 다가간다. 지수가 윤주에게 처음 입맞춤하는 순간 두 사람의 연애가 시작됐다고 본다면, 그때까지 영화의 러닝타임은 25분 정도가 흐른다.


처음에는 그 시간이 90분이 넘는 전체 러닝타임 중 적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가 ‘동성애’를 소재로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은연 중에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한 인물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인하고 혼란스러워하다 주변 사람들과 갈등까지 겪고 마침내 연애를 시작하겠거니, 그렇다면 거기까지의 러닝타임이 상대적으로 길겠거니.


연애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의 저 대사, ‘네가 무슨 반찬 먼저 먹는지 보려고’가 등장하면서부터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이 영화는 여자와 여자가 연애하는 이야기지만 그 방점을, ‘연애’에 더 크게 찍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나의 성별, 너의 성별이 아닌 나와  너의 ‘관계’에 오롯이 집중하는 그 시도는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서로 다른 성별이든 같은 성별이든,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가 시작되면 으레 나타나는 감정과 사연이 있게 마련이다. 둘이 함께 설레고 궁금하다가, 어느 한쪽의 감정이 조금 더 빠르게 또는 느리게 움직인다. 이 차이는 집착이나 외로움을 낳는다. 둘은 이제 진심을 확인할 기회를 찾든 멀어지든, 선택을 내린다. 피곤하지만 바보처럼 늘 반복하는 연애 또는 관계….


물론 동성애라는 소재를 빼놓고 이 영화를 논하기도 어렵다. 영화 속 사실상 유일한 ‘변수’가 동성애다. 이 영화에는 멜로가 흔히 다루는 그 어떤 사건이나 갈등, 이를 테면 시한부 불륜 전쟁 등이 없다. 기껏해야 윤주의 일상이 전보다 불안정해진다는 것뿐, 그저 담백하게 연애의 과정을 펼쳐 놓는다. 그러니 동성애마저 고려하지 않으면 이 영화는 너무 평범해진다. 현실 반영을 넘어서는 현실 복제가 돼버리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본 뒤, 그래서 성별과 연애 중 어디에 더 방점을 찍을 것인가. 저마다의 답은 다를 수 있다. 어느 쪽을 조금 더 강조하든 그것을 두고, 동성애를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분법을 적용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동성애는 애초에 지지와 반대의 영역에 있지도 않다.) 현실만큼이나, 그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의 질곡도 꽤나 복잡하기 마련이니까.



“저는 원자재의 질감을 그대로 살려두고 싶어서요.”

미술 작품을 만들던 윤주는, 재료의 통일성을 갖추라는 지도교수의 말에 그렇게 답한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또 인정받고 싶던 윤주의 심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 영화에 대한 내 평도 그와 맥이 닿는다. ‘저 어느 시공에 살던 윤주와 지수는 연애를 했습니다. 그 연애에 공감했고, 그 연애를 응원했습니다. 우리의 연애였습니다. 그뿐입니다.’


영화가 끝난 저 뒤편, 윤주와 지수는 어떤 사이로 남았을까. (스틸컷)




[함께 보면 좋을 영화]


<조금만 더 가까이> 감독 김종관 / 2010년

지난해 영화 <최악의 하루>로 주목받은 김종관 감독의 이전 작품. 옴니버스 구성이다. 연애가 시작될 듯 말 듯, 시작된 뒤, 끝난 뒤라는 각 부분을 서로 다른 인물과 연인이 표현한다. 성 소수자를 사랑하게 된 여자도 등장한다. <연애담>이 그렇듯 강력한 ‘한 방’은 없지만, 대사 한 줄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흔들리는 물결> 감독 김진도 / 2016년

동생의 죽음 앞에 마음을 닫아 버린 남자, 그 마음을 연 여자에게마저 죽음이 눈앞에 있다. 죽음과 사랑, 셰익스피어 작품에나 등장할 법한 무거운 소재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은 마치 <연애담>처럼 잔잔하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늘 두렵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 관계 덕분에 희망을 얻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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