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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Jan 13. 2020

어느날 엄마의 말이 남았다

엄마는 기억하지 못할 엄마의 말 모음.zip

1. 다시는 안 보내준다 넌.     


초등학교 1학년 때인가, 2학년 때인가. 엄마가 우리 반으로 인원 수만큼의 아이스크림인가, 빵을 보냈다. 그런 게 있었다. 부모님(이라고 하지만 엄마들)이 반에 먹을 걸 돌리는. 반장, 부반장은 꼭 해야 했고 원하면, 여건이 되면 누구나 해도 됐다. 그때만 해도 우리집은 ‘그 정도’ 여건은 됐고 다른 엄마들과 잘 모였던 우리 엄마도 그 대열에 동참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갔다. 옷 갈아입고 TV 앞에 앉았다. 조금 시간이 지났던가. 엄마가 물었다. (아이스크림인지, 빵인지 그게) 잘 왔는지, 잘 먹었는지. 그렇다고 했다. 엄마는 목소리를 높이진 않았지만 그래서 더 괜히 섬뜩한 톤으로 말했다. 다시는 안 보내준다, 넌. 그러면서 다 갠 빨래 들고 일어나버리던 엄마.      


잘 왔더라, 잘 먹었다, 고맙다, 친구들이 고마워하더라. 이런 말을 내가 먼저 안했다는 이유였다. 안하려고 안 한 거 아닌데, 라는 생각을 그 때의 내가 했던 기억이 난다. 화가 날 수는 있지만 꼭 그렇게 표현할 건 아니지 않나, 라고 표현하기에 난 너무 어렸던가보다. 그냥 엄마가 왜 화내지 하며 멍해지기만 했다.

      

엄마, 화가 날 수는 있지만 꼭 그렇게 표현할 건 아니지 않았을까? 조금만 다정해주면 좋았을 텐데.      


2. 우리 딸은 5학년 걸로 읽어야 되지 않을까?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시장 가는 길에 있던 작은 서점에 엄마랑 갔다. 읽을 책을 고르는데 내 손에 잡히던 게 이런 거였다. 초등학교 X학년이 꼭 읽어야 하는 이야기. 학년 별로 제목이 나눠져 있었다.      


어릴 때부터 똑부러진다는 얘기 참 많이 들었다. 유치원에서도, 초등학교에서도. 물론 그 이후에도. (아무튼 틈새자랑) 난 3학년이니까 3학년 걸 집어 들려는데 옆에 있던 엄마가 말했다. 우리 딸은 5학년 걸로 읽어야 되지 않을까? 서점 주인이 따님이 책을 많이 읽나 봐요, 했던 날. 5학년용 책을 사게 됐다.     


누가 보고 있지 않았어도 '우리 딸'이라는, 마치 누군가 앞에서 나를 중립적으로 가리키는 말을 쓰며 그 책을 권했을까? 그렇게 했으면, 그건 권한 게 맞았을까?      


엄마, 자식에게 기대가 큰 건 어느 부모나 다 마찬가지일 거야. 그런데 엄마. 난 자라오면서 내가 너무 다른 사람의 시선에 이거나 인정받지 못한다고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들을 할 때마다 그날이 자꾸 스쳐.      


3. 아나운서는 아니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전학을 갔다. 전학 간 학교에서 방송부에 들어가게 됐다. 방송 시작 전 장비 체크하고 온에어 되면 음향 조율이나 화면 전환 같은 걸 했다. 프로그램 뭐할지 같이 논의한 기억도 있는 걸 보면 PD나 연출 쪽이라고 봐야겠지. 크게 보면 스태프. 그냥 그런 게 재미있어 보였다.

     

엄마한테 방송부가 됐다고 했다. 엄마는 거기서 뭘 하냐고 물었고 난 있는 대로 대답했다. 아나운서는 아니고? 엄마는 내게 그렇게 물었다. 엄마가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막 선망해서도, 그 직업에 뭐 남다른 사연이 있어서도 아니었으니 '아나운서는 아니고?'가 발화될 때의 분위기는 대충 예상이 될 수도.

      

아나운서로 뽑히기에 네가 예쁜 얼굴은 아니지. 그러니까, 아나운서는 ‘못’된 거고 ‘못’돼서 스태프가 된 거 아니냐는, 그 말투와 표정의 꾸덕한 여운.

      

엄마, 근데 나 엄마랑 똑같이 생겼어.


4. 네가 미안하다고 해라 어? 알겠나?

     

아빠는 나와 동생이 어릴 때부터 그랬다. 어떤 한 포인트에서 화가 나거나 감정이 심하게 상하면 옆에 있는 거 좀 던지고 부수고 엎고 그런 양반. 며칠씩 말도 안 할 땐 나머지 가족들도 소리를 쉬이 못냈다. 일정한 규칙이나 예측가능성도 없이 불시에 그랬단 게 지금 생각하면 더 문제이긴 하다. 다 적진 못해도 아무튼 그런 상황이 ‘부지기수’였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스무살 이후인데 할머니까지 같이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아빠가 반찬을 놔줬는데 내가 '됐다 그만 줘' 였나. '거기 놔 그냥' 이었나. 그런 말을 했다. 소리를 높인 것도 아니고 어떤 의도도 없이. 무뚝뚝할 뿐인 말투로. (경상도 말투로 저 말을 읽어보면 별거 없는 말이란 걸 알 것이다..!)


아빠는 그 자리에서 숟가락을 팽개쳤다. 저녁자리는 황급히, 대충 정리돼 버렸다. 엄마와 나와 동생은 아빠를 집에 내려다 주고 근처 사는 할머니를 모셔다 드린 뒤 다시 집으로 왔다. 주차장에서 집으로 올라가던 길. 엄마는 말했다. 네가 미안하다고 해라 어? 알겠나? 부탁 좀 하자. 엄마 좀 살자.

       

한 어른에게 예의가 없었으니 네가 정중히 사과하는 게 좋겠다는, 다른 어른의 조언 같은 게 아니었다. 한번 저러면 며칠씩 집안 분위기를 살얼음판으로 만드는 어른의 기분을 최대한 서둘러서 풀자는, 그래야 다 편하니까 그래 달라는 다급하고 안타까운 부탁.


엄마, 난 알아. 아빠가 그럴 때면 잘못의 여부와 상관없이 덮어놓고 사과했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단 것. 난 엄마를 이해해. 엄마가 가여워. 하지만 난 나도 너무 가여워.


집에서 숨조차 편하게 못쉬던 날들이 불쑥 떠오르면 어쩌지 못해서 숨만 후- 쉬는 내가.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고,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는 말을 난 안다. 하지만 처음이라는 이름 뒤에서 무수히 생겨나던 그 아픈 말들과 아픈 마음은 아직, 나만 안다. 부모님은 알지 못한다.

 

<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마크 월린)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부모가 한 말과 행동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말과 행동을 어떻게 기억하고 받아들일지는 내가 선택하면 되는 거라고. 20대의 많은 시간을 20대 이전의 시간들을 되뇌고 해석하며, 어떤 기억으로 남길지를 고민하며 보냈다.


30대가 되어서도 비슷할 것 같다. 평생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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