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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Aug 22. 2020

'첫 유럽'이 핀란드입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스물 아홉의 12월 18일. 서울에 사는 사람 중에서는 내가 제일 따뜻하게 입었다 자신할 만큼 '무장'을 했다. 상의는 패딩 포함 네 개, 하의는 두 개 그리고 방한 부츠까지. 오전 7시대의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 탑승수속까지 모두 마쳤다. 메일 앱에서 알림이 울렸다. '이지안님, 최종합격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스물 아홉의 10월 31일. 2년 3개월을 다니던 곳에서 퇴사했다. 회사 1층 문을 나설 때, 사람들이 배웅해줄 때. 그 느낌이 선연하다. 스무살 넘어부터 부모님과 사는 집에서 기숙사로, 하숙집으로, 원룸으로, 또 다른 지역으로 이렇게 이사도 많이 다녔고 퇴사도 처음은 아니었는데. '머물던 곳'과의 마지막이면 늘 느끼던 감정인데.


퇴사 후 내 일상은 참 평온했다. 낮밤이 바뀌는 일은 없었고 무력감에 휩싸이는 일도 거의 없었다. 아침 7시 30분쯤, 동트는 겨울의 아침을 창밖으로 보다가 간단히 아침을 차려 먹고 씻고 하루를 시작했다. 걸어서 도서관에 가거나, 카페에서 글을 썼다. 글에는 때때로 입사지원서가 포함됐다. 주 2, 3회씩 산에 가기도 했다.


소속 없는 생활을 언제까지 할지 모르니, 돈을 아끼려 카누 같은 커피를 집에서 타서 나가거나 편의점에서 천 원 커피를 사먹고는 했다. 궁상맞아 슬프다는 생각, 그러고보니 이것도 없었다. 오히려 내 생활을 내가 '관리'하는 그 느낌이 좋았다. 저녁엔 동네책방에서 하는 북토크 같은 데를 주로 갔다. 자정을 남기지 않고 잠들었다.


퇴사 후 두 달이 지났고,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정확하게는 헤드헌터에게서. 합격이었으나 출근 일정과 연봉 조율이 남았다. 출근 날짜 확정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용기내(?) 티켓부터 끊었던 나. 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최종합격' 메일을 받았던 것이고, 다행히 원하던 1월 초로 출근이 조율됐다.


"으히히 나 정말 가는 거야!!" 방한부츠를 통통 굴렀다. 두고 가는 것에 대한 걱정이나 후회 없이, 돌아와서의 일에 대한 걱정이나 불안 없이 떠나는 그 기분. 이 기분이 갖춰지려면 얼마나 많은 조건들이 얼마나 적절한 때에 충족되어야 하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기뻤다.


핀에어에 탑승했다. 맥주, 와인 야무지게 챙겨 먹었고 가져간 책을 읽었다. <죽음의 수용소>의 저자 빅터 프랭클의 철학을 토대로 알렉스 파타코스가 일의 의미에 대해 쓴 <무엇이 내 인생을 만드는가>에 푹 빠졌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내 생활과 성찰은 비행기에 오른 뒤라 해서 접어둘 것이 아니었다. 이 여행은 그런 것이었다.

9시간가량 지나 현지 시각 오후 3시,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도착했다. 기내에서 공항으로 걸어가며 본 핀란드의 첫 하늘은 그 색이 참 오묘했다. 오후의 어스름이 깔렸지만 잿빛이라기보다 흰빛이었고 옅게나마 분홍빛이 스며든 듯했다. 빗방울도 돋았다. 무민 카페가 환영하는 공항은 곳곳이 깔끔했다.


숙소는 중앙역 근처였다. 공항 리무진을 탈지 기차(지하철의 개념)를 탈지 고민했다. 약 2천원의 차이지만 여행의 처음부터 비싼 것, 편한 것을 선택하고 싶지 않아서 기차를 타기로 했다. 안내가 잘 되어 있어 타러 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기차가 들어서는 선로 바로 앞에서 티켓을 구매할 수 있고, 나는 직원이 도와주었다.


기차 안도 공항에 비할 바 없이 깨끗했다. 사람들은 조용했다. 밖은 이미 어두웠다. 북유럽의 겨울은 오후 3시 이후면 저녁이다. 큰 캐리어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을지 신경 썼고 어두워서 잘 보이는 것도 없지만 창밖을 봤고 구글맵으로 현 위치와 목적지 사이의 거리를 확인했다.


중앙역은 설명하자면 현대적인 동시에 고풍스러웠다. 이제 깔끔하다는 단어를 쓰는 게 괜할 만큼 거기도 그랬고 다양한 상점들이 있다는 점에서 현대적이었지만, 건축 양식에서 오는 분위기나 1층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것에서는 고풍스러웠다. 사람들은 저마다 어딘가로 향했지만 소란하거나 달뜨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중앙역의 여러 출구 중 숙소로 가려면 어디로 나가야 할지 몰라서 처음에 한 출구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다른 출구로 나가기도 했는데, 역 자체가 크지 않아 어디로 나가든 돌아간다고 하기 민망할 만큼 금방 제 길을 찾을 수 있던 거였다. 구글맵을 다시 요리조리 돌려가며 숙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숙소까지는 원래 걸어서 10분인데 그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살짝 헤매기도 했고, 무엇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심장을 쿵쿵 울려댔기에 그걸 촘촘히 눈에 담느라 분주했다. 거리의 조명과 가로등, 건물 벽면의 문양, 간판들, 사람들. 보슬보슬 오는 비, 편평하지 않은 노면 위 캐리어도 숙소로의 걸음을 빠르게 하지는 못했다.

핀란드는, 헬싱키는 나의 첫 유럽이었다. 유럽에 대한 환상도 선입견도 없지만 처음이라는 단어 때문에 그리고 첫 유럽이 핀란드라는 흔치는 않은 경우이기 때문에, 특별했다. 유럽의 다른 비슷한 나라들과 비교하며 '여기는 이게 거기와 다르구나' 할 것 없이, '여기는 이렇구나' 할 수 있는 순간들이 첫날부터 겹겹이 쌓여갔다.


비교도 분석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여기는 또는 이건 이렇구나 할 때 많은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을 안다. 찾으려 하지 않으면 찾기 어려운 매력과 장점이라는 게 보일 수 있다든지. 여기 또는 이것이라는 '대상'을 바꾸려 들기보다는 그 대상과 함께 있는 '나'를, 정확히는 나의 시선을 바꿀 여지는 없는지 돌아보게도 된다.


핀란드를 여행한 보름여의 시간에 내가 핀란드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할 때 (물론 짧은 시간의 한정된 경험 안에서 보는 있는 그대로라는 것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오히려 선명해졌던 것은 '나'였다. 떠나오기 전 나의 회사 생활, 퇴사 후 일상이 불필요한 감정의 덧입힘 없이 나에게 다가왔고,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보고 싶어졌다.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이 여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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