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안 Jan 01. 2021

피자 가게 전단지 1장, 중국집 전단지 1장

1월 1일. 한 해의 첫 날이다. 오후 1시 무렵, 며칠 이어지던 맹추위가 조금 누그러져 걷기가 제법 괜찮았다. 내가 사는 집은 넓은 골목의 도로를 걷다 왼쪽으로 몸을 틀면, 계단을 십여 개쯤 오른 뒤 공동 현관이 나오는 구조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던 때였다.


"아, 아유 죄송해요. 요것만 금방 붙이고 갈게요. 새핸데 요거 좀 붙이고."


중년의 여성이었고 계단 옆 벽에 전단지를 두어 장 붙이고 있었다. 죄송하다는 첫 마디가 들렸을 때 이미 그가 왜 죄송하다고 하는지를 '이해'했다. 이렇게 전단지를 붙이는 일이 처음이 아닐 것이다. 간혹 누군가는 '이런 거 여기 붙이지 말라'는 말로 핀잔을 주거나 눈살을 찌푸렸겠지.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했을지도 '이해'한다.


죄송하다는 그 말에 곧바로 아니라고, 괜찮다고 했다. 입바른 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상관이 없었다. 거의 '반사적으로' 죄송하다고 하는 그 사람을 안심시키고 싶기도 했다. 마음이 그렇기도 했고.


"요거 좀 가져가줘요."


피자 가게 전단지 1장, 중국집 전단지 1장이었다. 받아들었다. 눈에 보인 손가락 네 개의 끝이 하얬다. 건조하고 찬 겨울에 전단지를 계속 만지며 마찰을 내니 손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그는 고맙다고 했다. 다시, 아니라고 했다. 비밀번호를 누르려고 할 때쯤 오른쪽 귀를 타고 말이 들려왔다.


"아휴 그래도 오늘은 날이 많이 풀렸어요. 따뜻하네. 고마워요!"


특별하고 고유한 기술로 문을 연 작은 가게 말고, 생계형으로 여는 작은 가게들. 그들이 고용하는 더 작은 사람. 12월 31일이 1월 1일이 되었다 해서 '새해에는 이런 분들이 어제보다 오늘 더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적는 건 너무 손쉬운 일. 손쉬워서 하지 않고 싶은 일.


전단지가 여기저기 붙으면 보기에 좋지 않을 수 있고 떼어내는 사람 입장에서는 또 성가실 수 있다. 모르지 않으나, 나는 그들의 불편 이해하는 것과 죄송하다는 말이 입에 벤 사람, 그 사람에게 전단지를 맡기고 가게에서 하루벌이를 하고 있을 얼굴 모를 사람의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는 것 중 후자를 선택하고 싶다. 새해에도.



작가의 이전글 햇살을 놓아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