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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Mar 08. 2021

30일의 확언

하고 싶은 게 아예 없거나 너무 많다면 쓰자, 확언!

확신한다니, 무엇을? '확언'을 처음 들은 2020년 늦여름이랄까, 초가을이랄까 그때의 느낌은 '의아함'이었다. 2021년 2월 3일부터 3월 4일까지, 정확히 30일을 매일 확언을 써본 결과, 여전히 한 마디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한 마디로 설명 안 됨'이란, 확언이 실체가 없고 내가 확언의 효과를 느껴보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확언 자체가 다양한 역할과 의미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설명이 안 돼서 길게 적어보는, 30일의 확언에 대한 이야기.

확언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된 계기인 유튜브 '돌돌콩' 채널이 모집한 '30일 확언'에 참여해 확언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네이버 밴드 기반이었고, 함께 한 많은 분들이 있었다.
나는 아침에 주로 확언을 적었지만 시간은 자기에게 맞는 때로 하면 된다.
이른 아침, 고요한 방에서 혼자 따뜻한 커피와 빵 한 조각과 함께. 내 인생 마음껏 생각해주기에 이만큼 좋은 응원이 또 있을까.
일어나면 가장 먼저 확언을 한 날도 있고 다른 일을 한 뒤 확언을 한 날도 있다. 확언을 끝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빠르면 30분, 길면 1시간 30분이기도 했다.
작은 노트라 금방 채울 줄 알았는데, 아직 많이 남았다. 내 인생도 아직 많이 남았다! ㅋㅋㅋ


확언은 야심이지


2월 3일 아침, 내가 처음 적은 확언은 이 두 가지였다. '지리산을 종주할 것이다', '핀란드어 자격증을 딸 것이다'. 머릿속에만 있던 막연한 목표나 바람 중 올해 안에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것부터 적었다.


아래 두 단락은 첫 날 확언과 함께 남긴 기록이다.


[지리산 종주는 핀란드 유학을 위해 올해 퇴사한다면 출국 전 가는 것으로 계획하지만 유학 또는 퇴사 여부와 무관하게 올해 마치고 싶다. '산 중의 산' 지리산을 경험하는 것으로 등산 팬임을 스스로 재확인하고, 나아가 그 준비 과정에서 체력도 다시 살려 놓고 싶다. (작년 하반기부터 유학 준비와 회사 생활을 동시에 한 데다 조금 여유가 생긴다 해도 주로 책을 읽었기 때문에 몸을 확실히 덜 썼다. 체력이 떨어진 걸 쭉 체감하고 있다.)


핀란드어 자격증은 핀란드 현지에서 취득하고 싶은 것인데, 유학을 올해 안에는 가지 못하더라도 취득해두고 싶다. 언젠가 현지에서 살게 될 때 핀란드어는 나를 살릴 언어인 게 공부의 가장 큰 이유다.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핀란드어로 된 그림책을 번역해 한국에 소개하고 싶은데, 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도 바쁜 일상과 '최애 취미=책 읽기'에 밀렸다 보니, 핀란드와 공부 루틴과 습관을 체계적으로 잡고 싶다. (끝)]


저렇게 적은 다음날에는, 핀란드어 자격증 확언을 이루기 위한 조금 더 작은 단위의 계획을 잡아봤다. 계획을 세우려고 하니 가장 먼저 나에게 주어진 평일, 주말의 가용 시간을 확인해야 했다. 그 시간에 할 국/영문 책 읽기, 전화영어 수업 등 여러 가지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핀란드어를 언제,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지를 고민하게 됐다.


그저 '오늘 할 일', '이번 주에 할 일' 이렇게만 적었다면 '해야 되는데' 하는 부담감, 하지 않았을 때의 또 다른 부담감으로 그저 미뤄두기만 하지 않았을까.  


계획 세우기, 왜 낯설지?


계획 세우기는 익숙한 듯 낯설었다.


살면서 계획 한번 안 세워본 사람이 있을까. 그러니 익숙했다. 그럼에도 낯설었던 것은 계획으로 적힌 그 일들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누군가가 정해주거나 어쩌다 보니 정해져 있는 일들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들. 그런 일들을 재료로 계획을 세워본 게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낯설었던 이유는 또 있다.


나는 언제부턴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졌다. (우울과 무기력에 휩싸여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다는 말도 거의 안 해본 시기를 지나 이런 오늘에도 닿더라.)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당연하게도 시간은 늘 부족했다. 절대적인 시간이 충분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작년 하반기, 그러니까 바쁘고 바쁜 동시에 중간 중간 짬이 생기던 때의 나는 이 두 모습을 오갔다. '대학원 지원만 마치면 핀란드어 공부, 영어 문법 공부 등등 하고 싶은 것 원없이 해야지'라는 다짐이 그 하나. '시간이 좀 나는데 책 읽기, 영어 공부, 핀란드어 공부 중 뭘 할까?', 한 마디로 끌리는 대로 하는 게 나머지 하나. (후자의 경우 대체로 책이 선택됐고 덕분에 책은 많이 읽었다.)


확언은, 정확히는 확언을 이루는 데 필요한 계획을 세우는 과정은 나를 저 익숙한 모습에서 벗어나게 했다. 하고 싶은 것들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었다. 설령 새롭게 하고 싶은 게 생기더라도 '오케이! 바로 해보자!' 하기보다 '지금은 이 확언을 구체화하고 실천 중이니 다른 일은 다음에 이렇게 진행해보자'와 같이 정리가 됐다. 그리고 버려지고 있던 시간을 찾아낼, 주어진 시간이 버려지지 않게 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게으르다는 그 말의 게으름


이쯤 적어놓은 계획들을 보면 굉장히 구체적이다. 2~3월까지 주말 2시간씩을 들여 핀란드어 교재의 1~5과 주요 표현을 공부한다, 평일에는 핀란드어 공부 사이트를 30분씩 이용한다, 그 외 국/영문서 읽기나 전화영어는 언제 어떻게 한다는 것도.


내가 이 계획을 세우는 이유, 지키고 싶은 이유를 본인이 알고만 있다면야 계획은 촘촘해서 나쁠 게 없다. 하지만 너무 당장의 디테일에만 매몰되는 것도 추진력을 키우기 어렵게 한다. 혹시 '나는 계획만 세우다 끝나' 하는 사람이라면 계획부터 완벽하게 세우려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계획은 어차피 계속 업데이트 된다. 바뀐다는 뜻이다. 이는 실행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계획이 막상 해보니 그렇지 않아서 더 작은 규모의 계획으로 수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예를 들면, '평일 30분씩 핀란드어 공부'라는 계획을 '하루에 핀란드어 단어 3개 암기'로 바꾸었다. 손쉽게. '어떤 계획이 지켜졌나 안 지켜졌나' 하는 것에 집착이나 자책하기보다 '지금 이 계획은 나에게 맞지 않나 보다, 때가 아닌가 보다' 하며 일단 넘기는 것도 필요하다. 새로운 계획이 그 대신 잘 지켜질 수도 있고, 계획을 크게 이행하지 않았는데도 그저 시간이 지나니 그 계획대로 가고 있을 수도 있다. 어차피 중요한 건 확언이지, 세부 계획 자체가 아니지 않나.


여기서 막간을 이용해! 어떤 계획이 실행이 안 되는 이유로 개인의 '게으름'만 있지는 않음을 짚고 가고 싶다. 내가 게으르지 않다는 것을 '항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았으면 하는 '응원' 차원이다. 나는, 우리는 이미 충분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 그것도 열심히, 진지하게.


오히려 어떤 일이 잘 안 될 때 그 이유를 게으름에서만 찾는 게 게으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게을러서 그래. 내일은 더 부지런해져야지!'라고 하면 편하다. 일이 안 되는 이유를 치열하게 따져볼 필요가 없으니까. 원인을 다방면으로 고려해보는 것이 '개선'의 가능성을 더 높여줄 것을 믿는다. (다 떠나서, 내일 더 부지런해지기로 다짐해도 곧바로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다음날 더 무거운 자책과 후회만 안 느껴도 다행일 만큼.)


나도 계획이 잘 안 지켜질 때는 내가 특별히 '풀어져서'가 아니었다. 그 이유는 대체로 갑작스럽거나 불가피한 야근이나 루틴으로 하는 다른 일들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든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돌아보면, 그런 이유들이 분명히 있다. 본인이 애써 쳐다봐주지 않아서일 뿐이지.


확언은 설렘을 먹고 자라


지리산을 종주한다는 확언에 대해서도, 체력이라는 준비물을 갖추기 위해 매달 두 번 등산을 간다는 계획을 세운 뒤 2월에 잘 지켰다. 3월에도 이어갈 요량이다. 종주 코스에 대한 조사도 했고, 2박 3일 동안 성삼재에서 천왕봉으로 가게 될 것 같다.


7일차가 되던 날. 확언 되뇌기, 계획 세우고 실행하기, 실행 여부 점검하기, 계획 보강하기, 새 확언 추가하기 등을 거치다 'WHY'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각 확언을 하는 이유를 말이다.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의미가 있으니 적힌 확언이겠지만,  더 진득하게 생각해보고 싶었다.


좋아하니까, 뿌듯하니까, 성취감을 느끼니까, (누군가에게) 자랑스럽고 싶으니까, 그 시기가 아니면 못 하니까 등이 각 확언에 적혔다. 이때 '좋아하니까'라는 단어는 공통되게 들어갔다.


결국 어떤 것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우선 좋아하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 다음은 그 걸 통해 성취감을 느끼는 것일 테고. 마지막으로 '인정'이란 조미료 같은 것인 듯하다. 있으면 지속하는 데 도움은 되겠지만 주요 요소는 아닌. 어쩌면 내가 좋아하고 성취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기도 할.


좋아함, 성취감, 인정 이 세 가지가 잘 어우러진 확언은 이룰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좋아하기만 하는 확언이라면 조금 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도전 요소를 높여보자. 성취감만 높고 설렘이 사라진 확언이라면 그 일을 좋아하는 마음을 되찾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찾거나, 애초에 좋아하는 감정으로 시작한 확언이 맞는지를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확언은 곧, 적는 것이다


확언을 한 지 3일가량 되었을 때, 근본적인 질문을 마주했다. 확언이란 무엇인가. '추석이란 무엇인가'만큼이나 심오했다면 웃길까. 확언의 모양과 질감이 선명하게 잡히지 않는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확언은 곧, 적는 것.


머릿속으로 '나중에 이렇게 하면 재미있겠네', '이것도 해야지' 생각만 하다 보면 곧잘 잊어버리기도 하거니와, 만약 그 생각을 'WHY'에 대한 고민과 계획 등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즉흥적으로 실행한다면 지속하기도 어려워진다. '확언을 쓴다'는 목적으로 앉아서 이렇게, 저렇게 쓰다 보니 내가 가려는 큰 방향 그 자체를 계속 기억하게 됐다. 쓰다 보니, 방향에 맞는 실행과 실행을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게' 됐다. 3일을 했을 뿐인데도 그건 체감이 됐다.


확언은 적는 방법도 다양한 것 같다. 어떤 이들은 '나는 ~할 것이다'와 같은 선언문(?) 형태도 짧게 적는다. 누군가는 일기처럼 줄글로 쓴다. 표에 건강, 진로, 신앙 등의 카테고리를 나누고 거기에 맞는 확언들을 적어 넣는 것도 봤다. 크고 작은 노트에 손으로 적는 사람, 컴퓨터 문서로 쓰는 사람 등 도구도 저마다 다를 수 있다. 해가면서 본인에게 편한 방법을 찾으면 될 것 같다.


확언 12일차쯤 되었을 때, 유튜브 채널 '돌돌콩'의 확언 영상들을 다시 봤다. 확언을 직접 해보는 가운데 확언이 무엇일까, 어떻게 하는 게 나은 방법일까 고민도 계속 하던 때 영상을 보니 전에 들었던 내용인데도 새롭게 귀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었다.


같은 확언도 매일 조금씩 다른 단어나 문장으로 표현해보라는 것.


거기서 착안해, 줄글 형태로도 확언을 적어보기 시작했다. '이 회사를 떠나는 마지막 날'을 상상하며 쓴 확언, 2월 17일 대학원 면접에 관한 확언, 2월 21일 저녁이 보다 편안하길 바라며 쓴 확언, 자가격리 기간을 고려해 쓴 확언, 올해의 12월 31일과 12월, 11월을 상상하며 쓴 확언 등. 이 확언들이 줄글이 쓰였다.


아래는 14일차의 소감.


"지금까지는 굳이 비유하자면 리스트형이었다. 먼 미래에든 가까운 미래에든 이루고 싶은 것을 한 문장으로 적고 그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리서치든 마음가짐이든, 어떤 식의 액션들을 그 아래에 적었다. 그 다음날엔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잘 되지 않는 것은 그렇지 않은 이유를 찾으며 개선했다. 개선해가고자 했다.


이렇게 하는 확언은 나의 목표와 바람을 명확하게 인지하게 하고, 실천의 가능성을 더 높여준다는 강점이 있지만 혹 진척도가 낮은 확언은 그 원인 분석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 자체가 역설적으로 진척도를 더 낮추는 듯도 했다. 머리로 하는 분석과 마음으로 느끼는 설렘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야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룬다는 뜻의 확언이 더욱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머리로 하는 분석만 있으면 계획표나 보고서와 다를 바가 없고, 마음으로 느끼는 설렘만 강하면 공상이나 현실도피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나는 집에 있던 손 크기 정도의 노트를 이용하고 있다. 이 노트는 일부가 '타이틀-리스트' 형태, 나머지 일부가 빈 공간이다. 떠오르는 확언이 있을 때면 '타이틀-리스트' 형태에 메모해 두고, 줄글로 풀어 적는 것이 필요할 때는 빈 공간을 이용한다.


디테일에 집착한다 싶을 땐 조금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시간도 마련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일 단위의 계획만이 아니라 주 단위, 월 단위, 연 단위의 확언과 그 계획을 적어보는 식으로. 첫 주말인 4일차부터는 주말 맞이 점검도 해봤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본 셈이다.


정해진 하나의 방식이란 없지 않을까. 처음부터 진행 방법을 정하고 시작하려 하면 시작조차 어려울 수 있다. 어떤 노트나 공간이든 좋으니, 어떤 분량이든 좋으니 시작하는 그 시점에 나에게 중요하고 또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일단' 적어보자. 단, '솔직하게'. 그러다 보면 나에게 맞는 확언 작성 방법이 생기고, 쓰여 가는 확언들을 분류(시각화)할 기회도 얼마든지 생긴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


위에서 '줄글로 이런 확언도 써봤다'고 할 때 눈치 챘겠지만, 지리산 종주와 핀란드어 자격증 취득 외에도 다양한 확언들이 나를 찾아왔다.


자가격리를 시작하거나, 대학원 면접을 보게 되면서 추가된 단기적인 확언이라든지. 그 외에 중장기적인 확언도 더해졌다. 회사에서 배운 하루 1가지의 업무 지식을 꾸준히 적어둘 것이다, 핀란드의 'sustainability' 높은 기업에 취업할 것이다, 재핀란드 한글학교에서 (봉사자로) 한국 아이들을 가르칠 것이다, 책을 출간할 것이다(이와 관련해서는 출간하고 싶은 기획들을 리스트로 정리해보고 있다), '여성 공동체'를 세울 것이다 등. 이들 모두 앞서의 확언들처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단순히 나열에 그치지 않고 WHY, HOW를 적었다. (각 확언들을 따로 브런치에 소개해보고도 싶다.)


아무쪼록 이렇게 되니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분류를 다시 해본다는 뜻의 정리였다. B라는 확언이 A라는 확언을 이루는 데 필요한 하위 계획 단계의 확언인 경우, 한 범주로 묶는다든지. 버릴 것은 버린다는 의미의 정리이기도 한데, (아직) 버릴 것은 없었다. 이전에 적은 확언과 연관성이 있거나 숙고한 것 위주로 이미 노트에 적기 때문인 것 같다.


내 확언들을 분류해보면 크게 이렇게 나뉘었다.


더 큰 지향/가치를 가리키는 확언 (장기 비전 또는 목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

그것을 이루기 위한 툴을 익히거나 내 것으로 만드는 확언 (중, 단기 목표에 가깝다.)

단단한 일상 가꾸기 (회복탄력성 기르기를 말한다. 루틴 설계 및 실천, 감정 알아차리기 등이 주로 해당.)


결과적으로, 확언이 공통되게 가리키는 방향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내가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이루고 싶은 가치가 보인다고 해도 좋겠다.


14일차와 24일차의 소감을 이어서 써본다.


"확언은 다짐과 책임의 나열이 아니라, 내가 더 편안하고 안정될 수 있는 선택을 표현해보는 기회이다. 그 기회는 나에게 중요한 것의 종류와 의미를 알게 하고 거기에 집중하게 한다. 내가 원하는, 미래의 어떤 하루가 보다 선명하게 그려지니까 내가 그린 그 미래와 결이 맞는 행동이나 마음가짐에만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 집중할 수 있었다. 그 말은 내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어딘가 덧없고 가치 없는 것에는 신경을 (신기하게도) 끌 수 있었다는 뜻이고, 다시 그 말은 내 에너지를 나에게 귀하고 필요한 곳에 쓸 수 있었다는 뜻이다."
"하루 중 걱정과 불안이 얼마나 많은지. 그 걱정과 불안은 직면할수록 크게 와닿고는 했다. 걱정되고 불안한 일은 그런데 바꿔 말하면, 내가 지금 가장 원하는 일이 된다. 나에게 주어진 일들이 잘 안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실은 나에게 주어진 그 일들이 잘 마쳐지기를 바란다는 나의 바람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 또는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의 방향이 옮겨 간다. 감정 또한 결이 달라진다. 이 과정이 다름아닌, 확언이 아닐까 싶었다. 확언은 걱정과 불안을 희망과 확신으로 바꾸는 과정."


확언, 여전히 진행 중


2월 3일부터 3월 4일까지, 30일 동안 유튜브 '돌돌콩' 채널을 통해 참여한 이른바 '챌린지'는 종료되었지만 여전히 확언을 매일 이어가고 있다.


적을 게 없는 날도 있었다. 무엇을 쓸지 고민을 1시간 넘게 하다 '이렇게 하면 너무 효율적이지 못한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결국 무언가를 적기는 했으면서. 그러다 며칠 뒤에는 문득 그랬다.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인데, 적당한 시간이라는 게 있을까? 이것조차도 효율을 생각하며 해야 할까?' 회사도 가야 하고 할일도 있으니 세월아, 네월아 확언만 적고 있을 수야 없지만 쫓기듯, 숙제하듯 할 필요는 더욱 없지 않나.


확언을 매일 적는다 해서 눈에 띄는 진척이 매일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도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중, 장기 확언의 경우는 더욱 그렇고 단기라 하더라도 변수는 얼마든지 많으니까. 그럴 땐 진행이 된 '결과'만 점검하기보다, '내가 그럼에도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 그 자체를 나에게 계속 인지시키는 것이 좋다. 하지 못한 것보다 한 것을 더 먼저 생각하면서 '그렇게 할 수 있었음에, 그렇게 한 나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다. 오글거린다고? 내가 한 일은 내가 알아주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준다. 나를 향한 고마움은 나에게 그 무엇보다 튼튼하고 멋진 기반임을 안다.


22일차에 쓴 소감의 일부.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내가 나를 기다려주면서 가는 것이 아닐까. 내가 나를 기다려주는 것을 어렵게 하는 내 안의 반응 습관들, 생각 패턴들 그리고 내 밖의 온갖 조건들. 때로는 저만치 쫓기듯 가는 나를 또 다른 내가 뒤에서 지켜보며 마음 졸이고 지쳐가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괜히 짠한 순간이다. 내가 나를 기다려주면서 가는 것, 험난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아야지."


과거의 감정이나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닌 '내 미래'를 생각하자 오늘이 바뀌었다. 오늘 내가 할 눈에 보이는 일들이 결정되었고, 오늘 내 마음가짐이 세워지기도 했다. 오늘이 바뀌면 또한, 미래가 바뀔 수 있다. 미래의 '나'와 오늘의 '나'는 서로를 돕는다.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이 보호 받고 자라나고 빛을 내도록.  




길고 긴 설명을 지나왔다. 확언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것 같다. 어쩌면 이 문장만으로 확언이 괜찮은 것임이 설명될지도 모르겠다. "우리, 적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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