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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Mar 01. 2021

나에게서 온 편지

나에게서 편지가 왔다. 2019년 10월의 내가 쓴 한 편의 엽서는 1년, 365일, 8760시간을 건너 2020년 10월의 나에게로 왔다. 발신인 이지안, 수신인 이지안.


2019년 10월 끝자락 어느 날의 저녁, 나는 정읍역에 있었다. 내가 당시 일하던 회사이자 일주일 여 뒤면 퇴사할 회사는 디지털 광고 대행사로, 내가 맡은 클라이언트 회사와 관련해 고창에서 당일치기 촬영이 있던 날이다. 원래 내가 가기로 되었던 촬영은 아니었다. 함께 일하던 팀원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그 촬영의 전날 갑작스레 퇴사했고, 내가 대신 그 일을 하러 간 것이었다.


퇴사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 위 단락에 이어서, 퇴사 이야기를 잠깐 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 나는 그 회사의 생활과 퇴사 무렵의 일들을 당시의 나보다는 이를테면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 그때의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을 한 걸음 떨어져 관조하듯 볼 능력도 자질도 없는 상태였다. 상황은 늘 내 상상과 해석만으로 확장이나 축소되었고 나는 감정에 휩쓸리거나 끌려다닐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로 인해 상처를 받았는지, 나와는 다시 보지 못하는 사이가 되었는지 다 적을 수 없다. 이 부분을 조금 더 길게 쓰면서도 자기 변명이나 합리화가 되지 않게 할 방법을 여전히 부족한 나는 알지 못한다.


그날은 많이 힘들었다. 이해되지 않는 사람, 지긋지긋한 상황 그럼에도 그날 내몫의 일을 해야 하는 부담감, 앞으로의 삶에 대한 걱정 반 두려움 반. 이렇게 저렇게 촬영을 마쳤다.


정읍역에서 서울행 기차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정읍시에서 마련한 듯한 엽서가 보였다. 이 엽서를 적어 내면 1년 뒤 그 엽서의 수신인에게 도착한다는. 정읍에서만이 아니라 이전부터도 여러 지자체에서 비슷한 것을 했던 듯하다.


1년 뒤의 나에게 몇 줄을 적었다.


'마음이 많이 아프고 무겁지. 너무 다치지 않았으면 한다. 버텨줘서 고맙다. 2019년 10월 23일, 두 번째 정읍에서.'


2020년 10월 22일, 이 엽서가 우리집으로 도착했다. 엽서가 도착한 그날은 몸의 상태도 그 며칠 내 가장 좋았고 마음의 상태도 그에 못지않았다. 일에 대한 몰입이 잘 되었고 몰입하는 만큼 일의 진행도 나쁘지 않았다. 내 행동을 자책하거나 무의미하게 되짚는 순간도 거의 없었다. 사람들과도 잘 지냈다.


그래서일까. 도착한 엽서를 읽던 그날 저녁의 나는 현재의 나보다는 예전의 내가 더 마음에 밟혔다. 지금의, 그러니까 미래의 나를 응원하려는 과거의 내가 고맙고 조금은 안쓰러웠다. 엽서에 적힌 한 마디는 그때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전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때의 내가 그때를 살던 나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다.


버티듯 기다려보자고, 기다리듯 버텨보자고.


그때의 나는 1년 뒤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는 바가 없었다. 나에게 다가올 시간이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대가 되는지 아닌지를 생각할 힘도 없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내가 없었다. 엽서에 쓴 문장은 그럼에도 살아야 하니까, '일단' 버텨보라고 한 말처럼 보였다.


나는 버텼을까. 버텼다. 하지만 이때의 '버틴다'는 단어는 그때의 내가 쓴 '버틴다'보다는 조금 더, 씩씩한 느낌이다. 퇴사 후 두어 달 동안, 내가 지나온 시간을 차갑게 돌아볼 수 있었고 그제서야 내가 내 삶을 대하는 온도는 '적정선'에 가까워졌다. 적정선을 비교적 잘 지켜가며 2020년 한 해를 살았다. 2020년의 나는 하루씩, 매일 다른 그 하루들을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느꼈다. 온전히 살아내려 노력했다. 나를 기다려주고 돌보고. 그러고 나니 다른 사람들이 보였다. 그러고 나니.


2020년 마지막 날, 내 인스타그램에 남긴 글.


-


1. 아침의 매력을 안 것이 무척 기쁘다. 자극에 민감해서 고요한 환경이 갖춰지는 것만으로 쉰다고 느끼는데, 아침은 그 쉼이 가득했다. 책상이나 테이블에서의 읽기, 쓰기, 공부, 명상, 아침 식사.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는 선에서 즐겼다. 루틴의 구성이나 순서는 조금씩 바뀌어 왔고 앞으로도 바뀔 수 있다. 그 부분은 정답도, 정해진 것도 없다. 어떤 아침을 보낼지 결정하려면 그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질문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2. 아침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고 여러 요인과 노력 덕분인데, 성취한 것도 적지 않았다. 책을 50권 읽은 것, 다양한 채널에 내 글을 소개한 것, 공부한 것의 성과를 낸 것 등. 눈에 보이는 것은 그렇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성취들이 실은 더 좋다. 가까운 사람들이나 모르는 분들이 내 글을 읽고 힘이 났다고 한 것, 일의 의미나 삶의 가치를 진득하게 사색한 것, 도전의 두려움 앞에 솔직해졌고 그래서 기꺼이 도전할 수 있었던 것 등.


3. 익숙한 감정, 손쉬운 판단 패턴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회복탄력성 기르기의 시작임을 지난해 책을 통해 인지한 뒤로, 올 한 해를 그렇게 지내왔다. 무엇보다 미안함과 죄책감을 자주 느꼈다. 피해자로서의 자신을 인지하는 것, 남을 원망하는 것은 오히려 쉽다. 반대로 가해자로서의 자신을 아는 것은 뭐랄까. 몰라서였든 나쁜 의도는 아니었든, 과거의 내가 남에게 남긴 상처들이 나에게 남은 것처럼 아팠다.


2020년의 무게감은 나에게 마치 겨울의 솜이불 같았다. 누르듯 감싸면서도 압도하지는 않는 것. 따뜻했고, 그 속에서 한 걸음 나와보고자 원할 때는 또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다. 고민을 낳는 환경이 없지 않았지만 그 환경이 내 모든 걸 결정하도록 두지는 않았음을 말하고 싶다.


머물러야 할 것은 머무르도록 했고, 나아가야 할 것은 나아가도록 했다. 무엇보다 멈추어야 할 것을 멈출 수 있었다. 꽉 찼을 때의 보람과 비워냈을 때의 여유를 나의 품과 속도에 맞게 누릴 수 있었고, 감사했다. (종교 없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지만 그저 '오늘'이기도 하다. 오늘 하루를 수많은 날 중 하나인 것처럼 살아내는 것이 그 하루를 다른 날과는 다른 특별한 날로 만들어줄 것이다.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대단한 다짐으로 시작하고 싶지는 않은 이유다.


오늘을 담담히 돌아보고 내일을 오늘처럼 살기를 바랄 수 있는, 그 삶을 나의 것으로 삼기.


-


1년이라는 시간을 건너온 우편의 여정이 곧 1년이라는 시간을 살아온 나의 여정 같았다. 고생 많았다, 애쓰고 힘들었던 것은 격려하고 살아낸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자. 미안한 것은 두고두고 미안해 하자, 혼자서. 어떤 미사여구도 없이.


마지막으로, 오늘을 과거로 맞이 할 미래의 나에게도 전하고 싶다. 걱정하지 말라고. 혹시 힘들다면, 그래도 걱정하지 말라고. 이 말을 전하는 지금의 나로 인해 미래의 너는 다시 일어날 거라고.




덧, 엽서에 적힌 표현이 '두 번째 정읍'인 이유는 2018년 12월 고창 선운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할 때 정읍역을 통해 서울을 오갔기 때문이었다. 2021년 2월, 선운사 템플스테이를 한번 더 다녀왔다. 그 이야기도 곧 이어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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