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민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
2021년 4월 18일, 서울 성수의 그라운드시소에서 진행 중인 <무민 오리지널: 무민 75주년 특별 원화전>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만난 각 무민 시리즈와 그 감상을 몇 편의 글로 나눠 적어보기. 전시는 올해 11월 14일까지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무민은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했다. 벌떡 일어난 무민은 눈보라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무민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발로 눈을 걷어차며 조용히 투덜거리기만 했다. 그러고 나자 무민은 기운이 빠졌다. 무민은 눈보라에서 등을 돌려 싸움을 끝냈다. 바로 그때 따뜻한 바람이 느껴졌다. 바람은 무민을 눈보라 한가운데로 가볍게 이끌고 갔고, 무민은 허공을 나는 듯했다.
무민이 온몸의 힘을 빼고 생각했다. '나는 공기고, 바람이야. 나는 눈보라와 하나야. 지난 여름에도 딱 이런 느낌이었어. 그때도 처음에는 파도에 맞서서 씨름하다가 몸을 돌렸더니 밀려드는 파도에 어우러져서 무지갯빛 물거품 속에서 코르크 마개처럼 둥둥 떠다니다가 조금 겁을 먹을 때쯤 바닷가 모래바닥에 딱 도착했지.' (135-136쪽)
봄이 왔지만 무민이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는 아니었다. 이제 봄은 무민을 낯설고 적대적인 세상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해방의 시기라기보다 무민이 극복하고 받아들인 새로운 경험이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무민은 봄이 아주 길어서 오래도록 기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날마다 아침이면 무민은 가족들 가운데 누가 일어날까 하는,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기대에 부풀었고 너무 기대한 나머지 겁이 날 지경이었다. 무민은 거실을 돌아다닐 때마다 어느 한 군데라도 부딪히지 않으려고 무척 조심했다. 그러고는 골짜기로 달려 나가 킁킁거리며 새로운 냄새를 맡고 간밤에 무슨 일이 일이났는지 살폈다. (157쪽)
투티키가 말했다. "이제 탈의실이 다시 탈의실이 됐어. 무더위가 찾아오고 사방이 초록빛으로 물들고 네가 따뜻하게 달구어진 부잔교에 엎드려서 찰랑거리는 물소리를 들을 때가……." 무민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겨울에는 왜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어? 그랬으면 위로가 되었을 텐데. 내가 여기에서 사과나무가 자란다고 말했었지. 그랬더니 네가 뭐랬어. 하지만 지금은 눈이 자라고 있다며. 그때 내가 우울해하는 줄 몰랐어?" 투티키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모든 일은 직접 겪어 봐야지. 그리고 혼자 헤쳐 나가야 하고." 태양이 내뿜는 열기가 점점 더 뜨거워졌다. (159쪽)
'뭐, 그렇지. 모험담은 늘 이런 식이지. 구하고 구해지고. 그 뒤에서 영웅들을 따뜻하게 덥혀 주려고 애쓰는 이들 이야기도 누가 한 번쯤 써 주면 좋겠어.' (163쪽)
"글쎄, 모든 걸 꼬치꼬치 캐묻지 마. 비밀을 조용히 간직하고 싶어 할지도 모르니까. 쟤들이든 눈이든 신경쓸 필요 없어." (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