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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Oct 28. 2021

꿈과 노력과 인내의 적정선

핀란드 오울루에서 읽은 그림책

<Tilda Tries Again> (Tom Percival, 2021)


2021년 9월 30일. 도서관에서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요즘의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이건 내가 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한데 '지금의 나'에게 위로나 지혜를 주는 책을 만나는 그 '인연'을 몹시 사랑한다. 어떤 책과 내가 때를 잘 맞춰 만나면 그 책은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가족, 친구, 스승이 된다. 이 책도 나에게 그런 존재로 남을 것 같다.


계속한다는 말.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 고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꿈, 노력, 인내라는 단어가 난잡해지다 못해 난삽해지기까지 한 지 꽤 오래인 듯하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탓하기에 앞서 그 단어에게 애초에 죄가 있었는지 물어본다면 쉽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단어를 대할 때면 연민 같은 감정이 들기도 한다.


꿈이 있는 모든 사람이 아름답다, 결과야 어떻든 노력했으면 된 거다, 참고 기다리면 좋은 날이 온다. 이 문장들에 완벽히 동의할 수는 없다. 동의하고 싶지도 않다. 남에게 또는 공동체에 어떤 해가 가는지도 모른 채 자기 꿈의 소중함만 이야기하는 위태로워 보였고 이들은 열심히 했으니 그걸로 인정받고 싶다는 이들에게서는 발전을 보지 못했다. 버티는 유일한 이유가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미래인 이들은 지루해 보였다.


앞서의 '이들'은 타인만이 아니다. '나'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럴지 모르겠다.


꿈과 노력, 인내의 '적정선'이라는 게 있을까. 정답이라 할 만한 적정선은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기왕이면 나만 행복한 것 말고 남도 행복할 수 있는 꿈이 무엇일까. 기왕이면 노력에서 결과로 이어지는 하나의 과정이 내 성장의 밑거름이 되게 해야 하지 않을까. 기왕이면 무작정 인내하기보다 왜 인내하는지는 알고 아는 만큼 덜 힘들 수는 없을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꾸준히 던지면서 말이다.


도입이 길었다.


이 책은 자신이 무엇도 할 수 없고 무엇을 한다 해도 소용이 없게 느껴지는 한 아이 '틸다'의 이야기를 다룬다. 틸다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틸다가 변해버린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바뀌어 버린 세상의 영향이다.


원래 틸다에게는 친구가 있었고 책이 있었고 장난감이 있었다. 틸다 주변의 모든 것은 평범했다. 아니, 모든 것이 틸다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존재했다. 평범하다는 표현은 의도와 상관없이 많은 존재를 이 세상에서 지워버릴 위험이 있지만 (ex. 평범하지 않다는 낙인), 익숙하다는 표현은 지극히 개인적임에도 타인과 세상에 조금은 덜 유해할 수 있다.


앞서 잠깐 말한 것처럼, 어떤 이유에선가 틸다 주변의 것들이 죄다 거꾸로 뒤집어지고 말았다. 바닥에 있던 것이 천장으로 간다든지. 새로 알게 된 영어 표현인데, topsy-turvy(온통 뒤죽박죽)이었다.


습관적으로 하던 행동들, 이를테면 장난감을 상자에서 꺼내거나 우유에 시리얼을 타는 것이 하나도 쉽지 않게 되어버렸다. 마치 마트에서 카트를 이용하는 것, 버스 카드를 충전하는 것,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것, 은행이나 병원에 가는 것 등 한국에서는 잠이 덜 깬 채로도 아무 탈 없이 할 익숙한 것들이 낯선 나라에 온 뒤로는 하나도 익숙하지 않게 여겨지던 내 모습 같았다.


저렇게 일상과 관련한 것들 외에 예를 들면 학교에서 그룹 과제를 할 때의 내 모습도 내가 알던 내 모습과는 꽤나 달랐다. 모국어를 쓸 때는 '말을 조리 있게 잘한다'라는 말을 듣다가 이곳에서는 '네 말을 이해 못했는데 다시 말해줄래?'라는 말을 듣고는 했다. 외부 환경이 바뀌면 나를 정의하던 많은 단어들이 나를 잠시 또는 영영 떠나갈 수도 있음을 체감했다. 그 떠나감은 물론 좋은 것일 수도 슬픈 것일 수도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어렵지만 이전에 하던 것들을 몇 번 시도해보던 틸다는 좌절과 무기력 탓에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만다. 침대가 천장에 매달린 어두운 방에 홀로 앉은 틸다의 머리 위로 'NOTHING'이라는 글자가 서늘하게 떠있었다.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는 낯선 나라에서의 생활도 종종 내 머리 위로 'NOTHING'이라는 글자를 띄우고는 한다. 이 생활이 내가 선택했고 내가 걷고 싶었던 길인 만큼 정말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은 아니고, 아무것도 못하겠는 그 마음을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쪽에 가까워 보인다. 외로움이라 할까. 이렇든 저렇든, 나는 내 몸을 다시 일으키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혼자서 산다는 것은, 그것도 낯선 곳에서 혼자 산다는 것은 내가 나를 움직이지 않으면 오늘도, 내일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밥이라도 한 숟갈 먹으려면 'NOTHING'이라는 글자를 무심한 듯 훅- 걷어내고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나를 일으킨 것이 '나'였다면 틸다를 일으킨 것은 다름 아닌 무당벌레였다. 온갖 것이 거꾸로 되어버린 세상에서 무당벌레도 별 수가 없었던지 몸이 뒤집힌 채 다리만 파닥이고 있었다. 틸다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때 무당벌레가 보여준 모습은 틸다가 무당벌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와는 무관했다. 무당벌레는 다시, 계속, 다시 다리를 움직이며 몸을 바로 세우고자 했다.


다시, 계속, 다시.


무지개 빛을 그리며 마침내 훨훨 날아가는 무당벌레를 보는 틸다의 표정에서는 다양한 감정이 보였다. 자유롭게 날아가는 무당벌레가 아름다워 보인다는 경이. 이게 되는 거구나 싶은 신기함. 그리고 틸다는 생각했다. '나도 계속해볼까?' 예전처럼 자전거를 타고 그림을 그리는 등의 익숙한 것을 상상하던 틸다는 작은 것부터, 익숙한 것들 중에서도 작은 것부터 다시 해보기 시작했다.


"Everything still felt very strange. But Tilda tried her best."


얼마 전 곽정은 작가의 유튜브 클립 중 하나를 보다가 이런 취지의 말을 들었다. '그래 맞아, 그런데 난 안 될 거야'라는, 'yes, but'을 자주 말하는 사람은 계속 두려움에 갇혀 있게 된다는 말. 틸다는 이 'yes, but'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활용한 경우가 아닐까. '그래, 모든 것이 여전히 이상해. 그런데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 거야.' 틸다가 할 수 있는 것은 점점 늘어갔다.


"And the more Tilda tried, the more she found she COULD do." 이 문장이 적힌 페이지에서 틸다가 타고 있는 킥보드 뒤로 무지개 빛이 영롱했다. 무당벌레가 마침내 몸을 일으켜 하늘로 날아갈 때 그 꽁무니를 비추던 무지개 빛과 같은 그것이. 틸다의 표정은 활짝 핀 웃음은 아니었지만 어딘가 안정되어 보인다고 하면 나의 착각 내지는 기대일까.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라서도 세상은 '원래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세상은 여전히 이전과 다르고 달라서 틸다는 여전히 많은 것이 어색하다. 이 책이 전하려 한 바는 나의 행동이 세상을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데 있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세상이 어떤 모양과 속도이든 내가 살아 있다면, 틸다와 무당벌레처럼 묵묵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것으로 다가온다.


그러다 보면, 세상이 또 바뀔 수도 있고.


낯선 나라 핀란드에 온 지 거의 세 달이 되었다. 익숙한 것들이 그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막막하거나 두렵거나 서러울 때면 '왜 나는 이곳에 와서 사서 고생을 하는 걸까' 같은 생각도 문득 한다. 그럴 때면 그리고 지금도, 처음보다 이곳에서 할 수 있고 할 줄 아는 게 많아진 내 모습을 구체적으로 떠올려 본다. 아무리 내 모습이어도 내가 자꾸 떠올리고 인정해주지 않으면 그것마저 낯설어지는 법.


정말이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나'보다 현재의 '나'의 뒤에 선 무지개가 더 밝아 보인다. 으-쓱-


마침 오늘 미역국 끓여 아침 먹으면서 본 박막례 할머니의 '잡채' 클립에서 이런 말을 듣고 말았다. "이 세상에서 한 번에 잘 되는 일은 한 번도 없다. 양파를 잘 썰려면 양파를 백 번은 썰어야지. 근데 어떤 사람들은 한 번 썰어놓고 나 칼질 못하니까 안 한대. 평생 못해. 내가 잘하고 싶으믄 고놈 할 때까지 해야지. 세상에 쉬운 것이 어디가 있냐. 인생이 그러더라. 내가 해보니까 고생한만치 낙이 있고 남한테 양보한 만큼 나한테 돌아오고 그러더라. 항시 용기를 잃지 말고 편들아 힘을 내. 힘을 내서 양파 퉁퉁퉁퉁(?)"


ㅋㅋㅋ 웃으면서 울었다.


힘을 내서 나만의 꿈 적정선, 나만의 노력 적정선, 나만의 인내 적정선을 찾아보자. 적정선을 찾았다 싶어도 적정선이 또 어떤 이유로 인해 바뀌거나 희미해질 수도 있겠지. 그래도 다시, 계속, 힘을 내서 가보자.


다시 보니 AGAIN의 I 위에 작게 무당벌레가 있구나. 책을 다 읽고서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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