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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진 Jan 05. 2020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은

음식점 등에서 결제한 뒤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어렵지 않게 종종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고맙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가진 힘이 있을까? 우리는 하루에 '고맙습니다'라는 한 마디를 얼마나 자주 하고, 듣는지 궁금했다. 흔히 말하는 손님들의 '갑질'이 사회적 이슈로 뜨겁게 떠올랐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시기를 전후로 많은 업장에서 비슷한 유니폼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출처 : Google image

이뿐만 아니라 어느 통신사의 ARS 고객센터 상담전화 연결음에서도 이런 멘트가 등장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우리 엄마가 상담해드릴 예정입니다.'

'연결해 드릴 상담사는 소중한 제 딸입니다. 고객님, 잘 부탁드립니다.'


나 또한 위와 같은 통화 연결음 멘트와 함께 상담을 해본 적이 있었는데, 통화를 마칠 무렵 나도 모르게 '고맙습니다.'라는 따스한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통신사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마케팅의 일환이었을지 모르겠으나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스해지는 건 꽤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이전 회사를 다닐 때, 문득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저렇게 날카롭고 예민한 사람도 집에서는 누군가의 따스한 남편이자, 아빠이자, 아들이자, 친구이겠지? 우리 모두는 예상치 못한 세상 어느 곳에서 연결될 수 있다. 지나치는 명동의 어느 거리에서도, 강남역 한복판에서도 마주할 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읽고 있는 당신도 전혀 일면식도 없지만 가상의 공간 위에서 생각을 나누고 공감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부족한 글을 한 편씩 쓰면서 '고맙습니다, 작가님.'이라는 독자 분들의 댓글을 볼 때마다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나만의 힘과 에너지를 얻어 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회로부터 부여되는 몇 가지 이름을 얻고 또 잃으며 살아간다. 태어나면서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아들과 딸이 되고 자라며 누군가의 남자 친구, 여자 친구가 된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는 동시에 며느리와 사위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나의 어머니는 분명 나라는 사람의 평생 동안 '엄마'이지만 그 이전에 외할머니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막내딸'이었다. 엄마도 엄마가 보고싶다는 이야기를 꽤 자주 들어왔기 때문에 무엇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정리해보면 한 사람은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며 동시에 여러 가지의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이다.나 또한 누군가의 아들, 아버지, 남편, 사위, 대리, 과장, 부장 등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듣는 수많은 순간에 우리는 어떠한 '이름'을 달고 있었을까? 카페 알바 직원, 자동차 계약을 성사시키고 난 직후의 판매원 등으로부터 '고맙습니다'를 형식적으로 듣는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온전히 나만의 '이름'을 걸치고 누군가로부터 진심 어린 '고맙습니다'를 듣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의 순간이다. 그것도 자주 찾아오지 않는.



'당신은 오늘 하루 '고맙습니다'를 몇 번이나 들었나요?'

'또 반대로 몇 번이나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했을까요?'

나의 어제와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다행히 세 번 듣고 두 번 말했던 것 같다.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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