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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진 Mar 14. 2020

나의 집 옥상에서는 남산 타워가 보인다

나의 집 옥상에서는 남산 타워가 보인다.



'나'의 집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남'의 집이다. 매달 꼬박꼬박 월세를 내며 이 넓은 서울 한복판에서 홀로 살아남기를 실천 중이니! 지금 살고 있는 이 건물 옥상에 오르면 이태원 거리의 뒷 배경으로 아주 가깝게 보이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서울의 랜드마크 남산 타워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단밤'처럼. 그래서인지 나는 일기예보가 아닌 남산 타워가 얼마나 선명하게 보이는가 하는 느낌으로 그날의 날씨를 확인해오고 있다.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는 포차 '단밤'이 등장한다. 뜻을 해석하자면 'Honey Night'. 우리들의 하루는 아주 가끔, 아니 자주 씁쓸하기에 하루만큼은 조금이라도 달달한 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말 그대로 '단'밤.


하늘이 파랗고, 맑고, 끝없이 높은 날에는 남산 타워가 아주 깨끗하게 보인다. 주말의 이른 아침이었지만 사람들이 꽤 많이 거닐고 있었으며 도로에는 차량들이 바삐 오가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햇살이 뜨겁고 맑았던 날일수록 밤하늘 또한 그러했다. 오늘의 늦은 오후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노을이 분명 예쁠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 까닭이다.


더 넓은 세상으로 홀로 나와 부딪혀보고 싶다는 생각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던 시기가 있었다. 어렴풋이 기억을 떠올려보면 적당히 더웠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강렬했던 그 찰나의 순간 이후로 내 일상은 참 많이도 바뀌었다. 일에 치여 늦은 밤과 새벽까지 내몰리기도 했었고 내 키에 딱 맞는 작은 침대에서 씻지도 못한 채 이틀 삼일을 꼬박 버티기도 했다.

비록 이태원 한복판은 아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작은 방, 조금 올라가면 마주하는 옥상에는 남산 타워가 분명하게 보인다. 지금보다 물질적으로 더 풍족해져서 저 남산 타워가 훨씬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며, 더 넓은 시야로 작은 것들을 마주하고 싶다.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들이 멀리서 바라보면 또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음을 나는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기 때문에.


그토록 예쁜 밤하늘의 별과 달을 보아도 별 생각이 없던 시간들. 너무 많이도 커버린 나는 이제 거의 매일 밤 옥상에 올라 남산 타워를 바라보며 반짝이는 별들과 건물의 빛이 차례로 꺼져가는 엔딩을 눈에 담는다.


누군가의 하루와 생명, 고민들이 씁쓸하면서 동시에 달달하게 스쳐갔을 저 남산 타워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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