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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진 Mar 07. 2020

다시 봄, 기억이 불어오는 계절

세상이 잠시 멈추었다. 살랑이는 꽃들과 봄바람을 만끽하며 바쁘게 대화를 나누어야 할 입들은 마스크로 굳게 닫혔고, 사람들은 새로운 만남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계절이 찾아오고 있었다. 다가오는 이 따스한 계절 앞에서 정처 없이 헤맬 테지만 향기로운 무언가 불어보고 있다. 분명,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엊그제 점심 식사를 위해 회사 건물 밖으로 나선 순간, 문득 짙은 향수와 기억이 스쳐갔다. 파아란 하늘과 따스한 봄 공기를 마주했기 때문이리라. 내가 떠올린 것은 한참이나 오래된 기억들이지만 찰나의 순간이나마 흐뭇했다. 음식점으로 걸어가는 내내 기분마저 살랑였다. 새 학기가 시작되던 첫날, 뭔가 분주하게 약속이 많았던 아이. 봄이란 그런 것이다. 추억과 오감을 자극하며 저마다의 시간들을 꺼내볼 수 있게 허락해주는 계절. 찬 바람이 사납게도 훑고 지나간 도시의 콘크리트 바닥이지만 그 배경에는 초록의 잎사귀가 무성하게 피어나는 계절. 가리려 해도 가려질 수조차 없이 누구나 반짝반짝 빛나던 존재로 환하게 변하는 계절.

대학교 새내기 시절과 군 입대 직전까지의 시간들은 지금처럼 돈을 버는 것도 아니었고 딱히 정확한 꿈도 없던 시절이었다. 미래에 대한 뚜렷한 비전도, 걱정 따위도 없어 마음 가는 대로 행동했던 시절. 하지만 수백 번을 떠올려봐도 참 즐겁고 행복했다. 아르바이트, 과외 등의 용돈 벌이로 겨우 소주 한 병의 값을 치르던 시절의 젊은 가난이 이제와 서보니 마치 외진 곳에 덩그러니 세워진 벚나무 같았다.


그 시절보다 많은 시간들이 훌쩍 흐른 것 같지만 여전히 나는 애매한 어른이 된 것만 같다. 가끔씩 만나는 친구들을 마주할 때마다 그러하다. 그때의 우리가 지금보다 비교할 수조차 없이 아름답고 멋져서 그럴까. 현실의 고민과 고통을 잊게 해 주는 가장 효과적인 마취제가 내게는 그 사람들과 시간이었기 때문일까.


어떤 해에는 벚꽃이 피고 지는 이 계절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다시 돌아오는 봄이라는 계절은 그 순간 내가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있던지 간에 더 좋은 기억과 동력을 소환한다. 평일의 업무와 바삐 오가는 노력들이 잠시 멈춘 주말, 외적인 요인들로 인해 또 한 번 멈춰버린 우리들의 움직임.


그래도 다시 봄, 기억이 불어오는 계절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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