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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진 Mar 28. 2020

시대별 인기 차트는 당시 젊은 이들의 마음을 대변해왔다

보통 노래 가사는 그 시대의 1020 세대, 즉 젊은 층의 상황과 분위기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참 흥미롭다.



1990~2000년대에는 사회 반항적인 가사가 대중들의 공감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90년대 초반의 대중음악 흐름은 신승훈, 이승환, 이소라 등이 이끄는 본격 발라드 호황 시기였으나 김건모, 김종서, 넥스트 등이 등장하며 록 음악 또한 전성기를 향해 달려갔다. 이러한 황금기의 온점을 포크 음악의 김광석이 찍기도 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과 함께 주도권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HOT, 젝스키스, 지오디, 핑클 등의 인기 그룹은 10대들의 차트 점령으로 이어졌다.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내기를 원했다.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스스로의 개성을 찾아가며 사회에 당당히 외쳤다. 이러한 분위기가 당시 인기곡들의 가사를 지배했다.

네가 네가 네가 뭔데 도대체 나를 때려 왜 그래 네가 뭔데
힘이 없는 자의 목을 조르는 너를 나는 이제 벗어나고 싶어

- HOT <전사의 후예(1996)> 中


2000~2010년대에는 2세대 아이돌(동방신기, 슈퍼주니어, SS501 등)의 등장과 함께 발라드의 전성기가 다시 찾아왔다. 2000년대의 포문을 열며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일 년'이 히트를 쳤고 2005년을 기점으로 윤도현, SG워너비 등 가창력 가수들이 아이돌을 압도했다. 그 후로도 백지영의 '사랑 안 해'가 잠시 등장하기도 했지만 2007년 원더걸스의 'Tell me'로 모든 것이 변곡점을 맞이했던 것 같다. 빅뱅과 2NE1이 탄생한 시점도 이 즈음이다.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 <멜론(Melon)>의 시대별 차트 한줄평에서는 2000년대를 '보여주는 음악 vs 들려주는 음악'으로 정의했다.


역대급 아이돌 그룹의 태동기였지만 마찬가지로 역대급 발라드 가수들 또한 아이돌에 반격했던 시기. 이 시기의 노래 가사는 대중음악의 황금기였음을 증명하듯 적절히 밸런스를 이루었다. 젊은 이들은 사랑을 노래했고, 꿈을 찾아 달렸고, 자신들의 멋과 정체성에 충분히 자랑스러워했다. 많은 대중문화 평론가들이 2000년대의 음악. 특히나 버즈, 윤도현, 김종국, SG워너비, 테이, 빅마마, 나얼, 에픽하이, 휘성, 주얼리 등의 명곡이 똑같은 해에 동시에 쏟아졌던 2005년을 정점으로 평가하고 있다.

사랑했나 봐 잊을 수 없나 봐 자꾸 생각나 견딜 수가 없어
후회하나 봐 널 기다리나 봐 또 나도 몰래 가슴 설레어 와

- 윤도현 <사랑했나 봐(2005)> 中


2010년대는 아이유라는 끝판왕의 솔로 여가수가 등장하며 최전성기의 포문을 열었다. 그녀는 엄정화, 백지영, 이효리를 잇는 영향력 막강한 솔로로서 자리 잡았다. 특히 '잔소리(2010)'와 '좋은 날(2010)'은 그녀를 정상급 스타로 이끌었다. 지금도 언급되는 저 두 곡이 2010년 같은 해에 아이유에게 갔다는 것은 그녀의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슈퍼스타 K>가 낳은 최고의 스타 장범준(버스커버스커) 또한 2010년대의 대중음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다. 한국 대중 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반으로 언급되는 <버스커버스커 1집>은 전곡이 차트 인함과 동시에 발매 8년 차인 올해 봄에도 역주행에 성공했다(2020.3.28 멜론 차트 기준 '벚꽃엔딩'이 실시간 차트 50위권에 진입).


2010년대에 진입하며 스마트 기기의 대중화가 이루어지며 젊은 층들은 더욱 빠르게 타오르고 식어갔다. 경제 상황이 호전되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이때의 젊은 층들은 유독 사랑과 이별 노래에 열광했다. 중반 이후로는 혁오와 우원재처럼 젊음과 청춘의 시기에 방황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고민하는 가사들이 대중적인 공감을 이끌어냈다.

난 지금 행복해 그래서 불안해 폭풍 전 바다는 늘 고요하니까
불이 붙어 빨리 타면 안 되잖아 나는 사랑을 응원해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가는데

- 혁오 <TOMBOY(2017)> 中



젊음을 치열하게 태워 이제는 연기만 남은 어른들. 이제는 그들에게 남아있는 희미한 연기마저 날아갈까 두려워하는 것만 같다. 반대로 활활 타오르는 청춘들은 지금을 즐기며 주위를 환히 밝히지만 자신이 언제 연기가 되어 날아갈지 두려울 터.


시대를 거쳐오며 90년대의 젊은 세대가 떠들던 낭만은 '오글거림'이 되었고, 그리움 가득한 00년대의 감성은 오늘의 젊은 세대들에게 '중2병'처럼 느껴지는 게 참 아쉽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걷는 거리, 지하철에서 듣는 인기 차트의 노래들은 분명 젊은 사람들의 상황을 빠짐없이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요즘 애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어떤 고민이 제일 많지?라는 의문이 들 때면, 나는 음원과 앨범 차트를 먼저 살핀다. 얼마 전 종영한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OST가 역주행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불합리한 세상 속, 고집과 객기로 뭉친 청춘들의 '힙'한 반란. 세계를 압축해 놓은 듯한 이태원의 작은 거리에서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살아남은 주인공 '박새로이(박서준)'의 목소리를 옮긴 노래. 2020년의 젊은 사람들은 다시 한번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원하는 대로 다 가질 거야 그게 바로 내 꿈일 테니까
변한 건 없어 버티고 버텨 내 꿈은 더 단단해질 테니 다시 시작해

- 가호 <시작(2020, 이태원 클라쓰 OST)> 中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2000년대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적당히 촌스럽고, 적당히 세련되고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적당히 조화로웠던 시기. 지금도 카페나 술집을 찾을 때 이 시기의 노래가 들려오면 참 좋다. 이유는 딱히 모르겠다. 그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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