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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진 Apr 24. 2020

세탁기 사용하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 아무 말 없이 5분 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는 사람이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고자 했던 예능이 있다. 그것은 바로 채널A의 침묵 예능, <아이콘택트>. 내가 봤던 클립 영상은 1990년대 가수로 활동했던 김민우 씨와 그의 딸이 등장했던 회차였다.

김민우의 아내는 희귀병을 진단받고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남겨진 11살 딸은 자신의 엄마를 그토록 아프게 떠나보내고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단다. 자신이 눈물을 보이면 남겨진 아빠가 더 힘들까 봐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11살의 여린 아이. 제작진은 이 부녀가 아무런 말없이 5분 동안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딸아이의 눈을 보는 순간 김민우의 외로운 눈물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딸은 울어도 괜찮다는 표정으로 오히려 김민우를 눈으로 토닥여주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났을까. 아빠를 바라보던 딸의 눈도 그렁그렁해졌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처음 흘린 눈물이 아니라, 아빠 앞에서 처음 보인 눈물이었을 터.

사실, 부녀가 아이콘택트를 하기 전에 했던 인터뷰가 교차 편집되어 등장했었다. 요즘 고민이 무엇이냐는 제작진의 인터뷰 질문에 딸은 이렇게 답했다. 아빠가 술, 담배를 끊었으면 좋겠다고. 엄마 때문에 많이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자신을 돌봐주느라 아픈 할머니가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11살의 어여쁜 여자 아이는 아빠의 바람보다 훨씬 빨리 어른이 되어 있었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행복한 것을, 아빠인 김민우는 그것을 지켜주지 못했음에 슬퍼하는 듯했다.


함께 한 시간이 많을수록, 추억이 많을수록, 사랑이 깊은 사람일수록 말없이 바라보는 게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 연인, 친구, 선생님, 동료... 가끔은 기회가 된다면 백색 소음이 가득한 어느 멋진 장소에서 말없이 누군가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싶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유명한 문구처럼 문득 눈빛만으로도 말을 건네고 마음이 넉넉히 담긴 답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김민우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장례가 마무리된 후, 집으로 돌아온 딸이 아빠에게 건넸던 첫마디가 있다. 슬픔도, 위로도 아닌 그것. 너무 먹먹해서 적어내기가 조심스러웠지만 우리의 주변을 소리 없이 지켜주는 이들의 소중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한 마디. 마치, 기차역의 플랫폼에서 떠나려는 이를 향해 씩씩하게 손을 흔드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졌다. 남은 사람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견뎌내야 했음을 아이는 아빠에게 말하고 있었다.


아빠, 세탁기 사용하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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