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명진 Apr 08. 2020

4월의 벚꽃과 좋은 글은 닮아있다


오늘 점심의 메뉴는 중국집.


2층에 위치했던 가게는 통유리로 환하게 밖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우리의 시선에는 커다란 벚나무 한 그루가 보기 좋게 걸려있었다. 주문을 완료하고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무언가 떠들 거리가 필요하다. 그날그날 이야깃거리는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보통은 저마다의 시선을 낚아채는 것들로 운을 띄우기도 한다. 공기를 가득 채우는 어색함을 쉽게 깨뜨리는 도구이기 때문에.


오늘의 주제는 4월의 벚꽃이었다. 굳이 새벽 4시의 감성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해가 쨍쨍한 대낮에도 벚나무를 보며 추억 여행을 떠날 수 있으리라. 때마침 오늘의 날씨도 타이밍을 아는 듯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그 아래로 춤을 추듯 봄바람이 불어왔다. 적당히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벚나무에 간신히 매달려있던 벚꽃 잎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중 일부는 우리와 나무를 유일하게 갈라놓던 투명한 통유리 바깥면에 붙기 시작했다.


"이야, 저거 얼굴 그니까 볼에 붙으면 떼는 거 엄청 귀찮은데!"


흩날리는 벚꽃 잎 앞에서 누군가 스토리텔링을 시작했다. 듣기 싫은 '나 때는 말이야...'가 아니라 우리는 저마다의 기억 속의 '사람'과 '이야기'를 소환했다. 새내기 시절 사랑에 빠졌던 그녀의 얼굴에 내려앉은 벚꽃 잎, 군 복무 시절 눈을 쓸어내는 것도 모자라 벚꽃 잎이 '예쁜 쓰레기'로 보이던 시절과 그리운 선임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떠오르는 사람들과 기억 덕분에 짜장면과 탕수육을 기다리던 시간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렇게 4월의 벚꽃은 우리에게 고해성사를 하듯이 추억 속의 이야기를 유도해냈다. 한껏 털어놓고 돌아온 사무실. 따스하면서도 선선했던 오후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퇴근을 앞둘 무렵, 브런치를 펼치며 문득 작가의 입장이 아니라 글을 찾는 독자의 시선에서 했던 고민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4월의 벚꽃과 좋은 글들이 어딘가 닮아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떠오르는 벚꽃 비를 바라보며, 우리는 자신의 기억 너머 어딘가의 사람과 이야기를 꺼낸다.

막힘없이 읽히는 좋은 글들을 읽으며, 우리는 자신의 기억 너머 어딘가의 사람과 이야기를 꺼낸다.


작가가 겪은 일상 속 가장 보통의 이야기들을 읽어내며 나는 나만의 기억을 주섬주섬 꺼내며 행복했다. 작년 11월의 겨울에 썼지만, 내 귀에 꽂힌 에어 팟을 바라보며 하나뿐인 자신의 중학생 딸의 생일 선물을 고민했던 아저씨의 사연을 담아낸 글이 있다. 놀랍게도 그 이야기를 읽어주신 많은 분들이 '글이 참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라는 댓글보다는 자신의 아버지와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이야기를 꺼내어 주셨다.


4월의 벚꽃처럼 내게도 많은 것들이 보이고 글로서 녹아들었으면 좋겠다. 잘 읽었다는, 좋은 글이라는 칭찬은 물론 언제 들어도 감사한 말이다. 하지만 당신의 사람과 이야기들이 내 글 앞에서 떠올랐으면 더욱 기쁠 것 같다. 오늘 내가 마주했던 통유리 밖 어여쁜 4월의 벚꽃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꽃 피는 것 보면 알지, 그리운 얼굴 먼저 떠오르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