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네 번째 동백이(공효진)의 생일. 그녀를 매일 같이 쫓아다니며 사랑을 고백하고 지겹도록 예쁘다, 멋지다 이야기해주던 용식(강하늘)의 꽃길 이벤트.
어린 나이에 엄마에게 버림받고 자존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며 험난한 세상을 헤치며 살아온 동백. 학창 시절에는 자신의 정확한 생일도 모르는 부모 없는 고아로, 스무 살의 어른이 되고 나서는 미혼모로 따가운 눈초리와 등쌀까지 견디며 살아내야 했던 그녀. 그래서 그녀는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고 땅을 보며 걷는 것이 더 편해졌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것조차 두려웠고, 혹여 자신의 마음 반쪽을 주었다가 그 사람이 떠나갈까 봐.
동백이가, 미소가 그토록 아름답던 동백이가 펑펑 울면서 토해내는 말들을 듣고 있자니 괜히 내 눈시울마저 덩달아 붉어졌다. 무슨 까닭이었을까. 나 또한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보며 걷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라면, 내 일상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소중한 이들에게 내가 용식이와 같은 사람이지 못했기 때문일까.
<동백꽃 필 무렵>. 보면 볼수록 참 따스하고 웃음 짓게 하는 드라마다.여기에는 세상을 구하는 멋진 영웅도, 운명적인 남녀 주인공의 만남과 이별, 뜨거운 사랑과 같은 매력 요소는 없다. 그럼에도 정말 세심하고도 가깝게, 마음을 찡하게 울리는 한 마디 한 마디들이 넘쳐난다. 참 이상하다. 구수한 매력을 넘어서 충청도의 어느 정겨운 게장 골목이 세련되어 보이기까지.
+ 동백이를 울렸던 용식이의 마지막 편지. 살면서 이런 편지를 써줄 수 있는 사람이 내 곁에 존재하는 것, 내가 이런 편지를 써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예쁜 삶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몇 글자 되지 않지만 이런 게 사람의 마음을 담은 편지고, 그 자체로 한 편의 아름다운 시(時)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