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방금 말씀해주신 그 방향도 좋을 것 같긴 한데요. 저는 이 콘셉트로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 물론 A 안이 좋지 않다는 건 아니에요!'
'저는 회식 메뉴로 삼겹살도 좋은데, 다른 거 먹어도 상관없어요!'
'요즘 힘들긴 한데, 그래도 버틸만해서 나쁘지 않아요!'
'지금 당장은 학점 관리를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 그런데 아직 젊으니까 이것저것 해보면서 막 살아도 충분히 좋을 것 같아.'
어느샌가부터, 나는 애매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도, 회식을 갈 때에도, 누군가 내 안부를 물어볼 때도, 후배가 상담을 요청해올 때도, 심지어 연애를 할 때조차도. 문득 생각해보면 대화에 있어 어떤 이슈가 등장했을 때 당당하게 '난 분명하게 이거라고 생각해.'라고 답했던 적이 손에 꼽기 힘들다. 아니, 거의 없다.
사람들을 만나고 대처하는 나의 방식에는 분명 그 장점이 있었다. 대학생 때 조별과제를 하면서도 나는 훌륭한 조율자가 될 수 있었고, 다음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회의실에서는 부드러운 기획자로서 각인되었으리라. 업무 이야기를 떠나 사적인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공감을 주고받을 때에는 성격이 둥글둥글한, 그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내 모습을 문득 마주했을 때에는 차디찬 공허함이 소리 없이 불어오고 있었다. 스스로 매몰차게 계속 몰아붙였다.
'그래서, 네 생각이 뭔데?'
'왜 맨날 다 좋다 그래?'
'너는 줏대도 없어?'
'너도 싫은 게 있을 거 아니야.'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오며, 나는 늘 둥글둥글하고 그저 대화를 나누기 편한 누군가가 되어왔다. '관계'의 측면에서는 100점 만점에 그 이상의 점수를 받았으나, '온전한 나'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1점도 채 아까운 사람이었다.
진짜 문제는, 이제서야 이러한 사실을 파악했다 하더라도 쉽게 내가 바뀔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는 것이다. 살면서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나에게는 더 이득일지도 모른다. '나 없이 사는 나'의 모습이 내 인생을 더 빛나게 해 준다니. 지독하게도 슬픈 아이러니인 것만 같다. 진짜 내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길 바라면서, 다시 마주하길 바라면서 걸어온 거리를 다시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내가 둥글둥글한 포지션을 유지해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누군가가 내 주위에 항상 있었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속 편한 소리를 쉬이 내뱉는 그들과 나, 누가 더 행복한지는 모르겠다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나는 세상에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다는 게 아닐까 싶다.
분명 어느샌가부터, 나는 애매하기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정하고 싶었던 이 슬픈 사실을 용기 내어 마주했으니, 이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더는 미루면 안 될 것 같다. 때로는 어떠한 필요에 의해서 애매하게 말할지라도 혹은 뻔한 서론으로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 대화를 마무리 짓고 난 후에라도 외쳐야겠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분명히 이거예요.'라고!
"긴장감 넘치는 액션 영화도 너무 좋아하는데요, 저는 잔잔한 음악이 함께 들려오는 영화를 더 좋아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