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리면 봄을 재촉하는 것인데, 지금 겨울비가 오는 걸 보니 이제 금방 추워지려나 보다야."
창 밖으로 차가운 비가 시끌벅적하게 내렸던 밤. 요란하게 흩날리던 빗방울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작게 말씀하셨다. 봄비는 내릴수록 봄이라는 계절을 따스하게 부추기는 것이고, 겨울비는 내리면 내릴수록 겨울이라는 차디찬 계절을 재촉하는 것이라고.
계절의 알림처럼 내리는 비에 대해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듣고 보니 그럴싸한 추측임에는 틀림없었다. 항상 4월의 어느 날 한바탕 내렸던 비 소식이 지나가면 완연한 봄이 우리 곁에 찾아왔다. 12월의 초입에 내리던 비가 그칠 즈음이면 거리의 옷차림은 두꺼워지며 겨울이라는 계절 특유의 찬 공기를 맘껏 맡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11월의 끝자락에 아쉽게 걸쳐있던 어느 주말 오후.
아버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계절의 변화를 느끼던 작은 아이를 만났다. 그것도 아주 찰나의 순간에.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자신의 등보다도 커다란 가방을 메고 걷던 아이. 초겨울의 거센 바람에 흩날리던 은행나뭇잎과 낙엽을 소중하게 하나씩 피해 걷던 아이. 좋아하는 간식이라도 사러 가는 건지 환한 미소가 많이도 예뻤던 아이. 눈에 비치는 세상 모든 것들을 천진난만하게 신기해하던 아이. 10초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아이와 마주쳤던 내가, 그 아이를 묘사할 수 있는 표현들이다. 아 참, 마지막으로 아이가 했던 말이 하나 있다. 내가 그 아이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었던 한 가지. 이 아이는 올해 6살이라는 것.
'엄마, 저 나뭇잎들 다 떨어져서 겨울 되면 나 이제 7살 되는 거야? 벌써?'
아쉬움이 가득했던 아이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6살 인생에서도 시간이 흘러가는 것은 못내 아쉬운 건가 보다. 이 6살 인생의 아이는 무엇이 그토록 아쉬운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어른의 1년과 아이의 1년은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스스로 책임져야 할 것들이 훨씬 많아지는 어른의 시간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고민해야 하고, 일해야 하고, 누군가를 사랑해야 한다. 타인과 끊임없이 만나 서로의 말과 감정을 섞고, 매 순간 크고 작은 결정들을 내리다 보면 그만큼의 적지 않은 아쉬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한 해를 떠나보내며 이루지 못한 것들이나 아직 준비되지 않은 다음 단계의 나이를 먹기가 조금은 두려운지도 모르겠다.
반면, 내년에 7살이 되는 게 그저 안타까운 6살 인생의 아이는 어떠할까. 새롭게 마주할 것들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을 테고, 유치원을 떠나 초등학교에도 입학해야 하겠지. 친구를 사귀는 법, 한글로 자신의 이름을 쓰는 것, 엄마의 도움 없이 심부름을 다녀오는 것,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숙제를 검사받는 것... 생각해보면 그 아주 어린 시절의 우리들 또한 굉장히 바빴다. 지금만큼이나 정신없이 바빴다.
6살 인생이라고 왜 아쉬운 것이 없겠는가. 무려 7살이 된다는 것은, 아이의 세계에 불어오게 될 거대한 바람이다. 문득, <동백꽃 필 무렵>의 8살 '필구'가 외쳤던 말이 떠오른다.
'나도 사는 게 너무 복잡하고 힘들다고!'
(그래, 필구야. 사는 게 힘들지 않은 나이는 없는 것 같아. 그렇지?)
그럼에도 내가 마주쳤던 6살의 해맑은 아이는 앞으로 세상의 수많은 것들을 새로이 보고 들으며, 사람의 감정도 배우고 멋진 어른으로 자라나겠지. 매년 떨어지는 낙엽과 함께 서서히 찾아오는 겨울. 아이는 그 풍경을 계절의 변화로서 기억할 것이고,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게 되는 세상의 알림으로 기억할 것이다. 수줍게 꼭 잡은 엄마의 손에 남은 온기와 함께.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나의 눈동자에도, 차디찬 겨울비가 내린다. 지금 적어 내려가는 이 글은 7살이 되는 것이 몹시도 아쉬웠던 예쁜 아이가 선물한 것이 아닐까.
아이가 내뱉었던 짧은 한 마디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진짜' 어른이 되고 싶은 소년의 글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