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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진 Nov 30. 2019

여보, 오늘따라 햄버거가 먹고 싶지 않네요


겨울비가 차갑게 내리던 어느 날.


밀려있는 업무와 글감을 정리하고 저녁도 간단히 해결할 겸 맥도날드 매장을 찾았다. 익숙한 매장 구석의 한 곳에 자리 잡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노트북과 작은 메모장을 펼쳐냈다. 추위를 재촉하듯 요란하게 내리던 창밖의 빗소리가 무색할 정도로 매장 안은 지극히 차분하고도 조용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이곳은 독서실인가, 맥도날드 매장인가' 하는 의구심을 품으며 노트북 타자 소리조차 신경 쓰고 있을 무렵. 한 노부부가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일부러 눈길을 노부부에게 옮긴 것은 아니었으나 겨울비로 한껏 쌀쌀해진 날씨에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들어서던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매장 내 1층 홀에는 나를 제외한 두 명의 대학생 손님만 있었을 뿐, 계산대에 직원이 한 명도 서 있지 않았다. 최근 대부분의 맥도날드 매장이 키오스크(Kiosk)로 주문과 결제를 대체하고 있었기에 당연한 풍경이기도 했다.


매장에 들어선 노부부는 텅 빈 계산대와 키오스크 기계를 번갈아 바라봤다. 직접 주문을 하시려는 듯 보였던 할아버지는 계산대로 향했다. 하지만 매장에 손님이 별로 없어 직원이 화장실이라도 갔기 때문이었을까. 할아버지의 외로운 외침에는 어떠한 응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잠깐의 기다림 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키오스크로 향했다.


한 마디 응대도 없이 멀뚱멀뚱 서 있던 키오스크 앞에 노부부가 섰다. '불고기 버거 세트'가 드시고 싶다는 할아버지의 의견에 할머니 또한 같은 것으로 나눠 먹자는 따스한 응답을 보냈다. 그렇다면 이제 두 분께 남은 단계는 키오스크 주문과 결제. 그런데 할아버지는 키오스크의 터치 화면이 아닌 측면의 버튼을 찾기 시작했다. 메인 화면 터치를 해야 원하시던 '불고기 버거 세트'를 주문하실 텐데. 여전히 계산대에는 직원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한참 동안 키오스크 앞에서 여러 시도를 거친 끝에 할아버지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몹시도 미안한 표정으로 할머니를 지긋이 바라보며 한 마디를 조심스레 건넸다.

'여보, 그냥 오늘따라 햄버거가 먹고 싶지 않네요.'

'아이고... 그래요? 그러면 우리 다른 거 먹으러 갈까요?'


자신을 위한 할아버지의 노력을 충분히 알았다는 듯한 따스한 표정으로 할머니는 대답했다. 그 순간, 이 모든 상황과 대화를 파악했던 나는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서둘러 노트북을 덮고 노부부에게로 다가갔다.


'할아버지, 주문하시는 거 제가 도와드려도 괜찮을까요?'


분명 오늘따라 햄버거가 별로 드시고 싶지 않다던 할아버지의 표정이 순간 환해졌다.


'고마워요, 젊은이. 저기 계산대에 사람이 없어서 어디 물어볼 수가 있어야지... 여기서도 햄버거 세트 주문할 수 있는 거요?'

'네, 제가 도와드릴게요. 어르신 분들께서 이런 기계에 익숙하시지 않으셔서 보통 직접 주문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노부부가 한참을 씨름했던 키오스크 주문은 내게 30초가 채 걸리지 않는 과정이었다. 주문이 입력되고 나서야 직원이 휴게실로 보이던 공간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 사람이 많이 없으니 주문하신 햄버거가 금방 나올 거예요.'

'아이고, 이거 고마워서 어쩌나. 복 받을 거요 젊은이.'

비가 내리던 창가 쪽에 자리를 잡으신 노부부는 정말 맛있게 불고기 햄버거 세트를 드시며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셨다. 도와드리겠다는 나의 말을 듣고 나신 후에야 표정이 환해지셨던 할아버지. 햄버거가 드시고 싶다던 할머님께 차마 주문하는 방법을 몰라 다른 걸 먹자는 말씀을 꺼내지 못했던 것이 분명했다. 할머님 또한 할아버지가 정말로 오늘따라 햄버거가 싫은 것이 아님을 눈빛 하나만으로도 알고 계셨을 터.


결국엔 맛있는 한 끼를 함께 하시고 나서야 두 분은 자리를 떠나셨다. 그토록 따뜻한 말투와 표정으로 내게 고마움을 전하셨던 노부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노트북 위의 차가웠던 나의 글은 무슨 까닭인지 한 글자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참 묘한 감정이었다.




숨 막히는 도시에서 일에 치여 자존감이 낮아질 때나, 마음처럼 글이 잘 써지지 않는 순간이 내게도 찾아올지 모르겠다. 피하고만 싶은 그 순간이 찾아온다면 오늘 마주했던 할머니의 포근하고도 따스한 표정과 말투를 떠올리려 한다. 자신을 위해 무던히도 애쓰던 할아버지의 사랑스러운 노력과 마음을 품어주던 할머니의 눈빛과 따스했던 한 마디.

우리들의 연애와 사랑은 어쩌면,

함께 살아갈 수많은 날들 속에서 서로에게 진심 어린 위로가 되는 단 한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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