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어제 새벽(정확히 말하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의 이른 아침이 되겠다). 오늘 하루 떠오른 글감도 정리할 겸 노트북을 열고 그 옆에 스마트폰으로 예능을 틀어두었다. 우연히 틀게 된 회차는 오래전 방송되었던 KBS 예능 <1박 2일> 시즌 1의 '시청자투어 3탄' 마지막 이야기.
당시 <1박 2일>의 '시청자투어 3탄'을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시청자 한 두 명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1세부터 100세까지 각 나이마다 한 명씩의 시청자를 섭외하여 떠나는 여행. 100명의 일반인 참가자들은 연령대별로 10개의 팀으로 나뉘었다. 1~10세의 영유아 팀부터 2,3,40대 팀으로 이어졌고 마지막 90대 팀의 막내는 무려 90세의 어르신이 되었다. 강호동 씨를 비롯한 기존의 MC 이외에 연예인 게스트까지 포함하여 10명이서 각 팀의 조장을 맡아 여행을 이끄는 방식이었다. 여행 방식은 기존의 연출처럼 식사 복불복, 이동, 게임 등으로 구성되었다.
방송이 클로징을 향해 달려갈 무렵, 모든 연령대의 팀들은 자신들의 연예인 조장들과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다. 여행이 끝났으니 각자의 일터, 삶으로 돌아가야 할터.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마주할 법한, 흔하디 흔한 이별 장면이었을지 모르겠으나 영유아팀의 조장을 맡았던 전현무 씨와 아이들의 이별 장면이 유독 눈에 밟혔다. 촬영 종료를 알리며 전현무 씨는 마지막 인사를 위해 여행 기간 동안 자신과 함께 했던 영유아 팀 버스에 올랐다.
"제가 천방지축이고 결혼에 대한 마음도 없었는데 이번 여행으로 달라졌습니다. 우리 아이들 덕분입니다. 좋은 추억 쌓고 돌아갑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후 버스에서 내리고 담당 VJ와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마지막 인사말과 함께 카메라 앵글에서 사라지려던 찰나. 영유아 팀 버스 안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아주 서러운 울음소리. 아직은 이별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 잠시나마 함께 했던 자신들의 삼촌이자 조장이었던 전현무 씨가 떠나는 것이 몹시도 슬펐나 보다. 담당 VJ는 '현무 형! 잠깐만요!' 하면서 전현무 씨의 뒤를 쫓아갔다. 결국 다시 달려온 전현무 씨가 우는 아이를 달래고 나서야 '진짜' 이별의 순간이 찾아왔다.
담당 VJ가 돌아서던 전현무 씨에게 마지막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멍하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며 눈물을 흘렸다. 연예계라는 환경이 그에게는 지금껏 몹시도 힘들었기 때문이었을까. 어떻게 보면 참으로 측은하고 안쓰러웠다. 언제 볼지 몰라 떠나는 것이 아쉬워 눈물을 흘리는 아이에게서 그는 분명 '평범한 진심'을 따스하게 느꼈으리라.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전현무 씨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아이들과 헤어지면서 이렇게 눈물을 흘리게 될 줄 몰랐네요. 이별이 아쉬운 것도 있지만, 제겐 너무나 오랜만에 사람의 진심을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보여준 진심을 영원히 기억하면서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방송에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전현무 씨를 비롯한 MC들은 1박 2일의 여행 동안 '연예인'이 아니라 그저 여행을 함께 하는 '사람'으로서 시청자들에게 다가갔던 것이 아닐까. 대중의 인기를 먹고살아야 하는 연예인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닌, 솔직하고도 순수한 '사람'으로서 시청자들과 함께 하는 그런 여행.
내가 함께 했던 여행과 사람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괜스레 눈물이 났다. 새벽에 창피하게 혼자 무슨 일인가. 생각해보니, 나 또한 사람의 진심을 따스하게 느껴본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학교를 다니며, 회사에서 일하며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왔지만 그저 순수한 마음을 확인했던 순간이 기억나질 않는다. 항상 정확한 목적과 손익 계산법을 통해 사람과 마주했고 대화를 나눴다. 로봇도 이런 로봇이 있을까 싶다. 전현무 씨가 헤어지기 싫다던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흘렸던 눈물이, 내게도 슬프게 맺혀 있었다.